[양산 고려인마을①] “그곳에도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네”

2022년에 작성한 고려인마을 지도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2년 12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국내 고려인의 생활문화에 대한 두 권의 보고서가 나왔다. 먼저, 국내 체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생활문화 이야기를 담은 재외한인동포 생활문화 조사보고서인 『새로운 정착, 고려사람』(글 김형준·백민영, 사진 김영광)이다. 국내거주지(3장), 고려인 지원단체(4장), 고려인의 세시와 의례(5장), 고려인의 삶의 이야기(6장)에 앞서 역사 및 현황(2장)에서 「고려인의 극동 및 중앙아시아 아주와 삶의 궤적」(김영술), 「구소련권 고려인의 한국 이주와 정착 및 생활실태」(김경학)의 논문과 고려인 국내현황 및 통계, 정책과 비자까지 소개했다. 국내 고려인동포 연구에 유익한 자료들이다.

2022년 국립민속박물관 간행 국내 고려인 조사보고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우리 안의 다문화’ 시리즈로 나온 『부산·경남 러시아어권 이주민들의 생활문화』(노용석·이정화·현민) 보고서는 부산·경남 지역 러시아어권 이주민들의 생활사와 이주민 지원단체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양산(북정동)과 부산(초량동) 내용을 보고, 2022년 겨울에 만든 한국내 고려인마을 구글문화지도를 수정하기로 했다. 양산의 고려인 상점들과 고려인 지원단체(양산 하나인교회)의 활동을 볼 때 이미 ‘양산 고려인마을’이었다.

‘양산 고려인마을’을 찾아가는 길

5월 31일 오전 10시 30분 부산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양산이 멀었다. 동행한 대한고려인협회 채예진 부회장은 목적지를 검색해보더니 망설임 없이 택시를 불렀다. 부산지하철 2호선 종점인 양산역에서 버스를 타야 했고 부산에 돌아와야 할 시간을 고려해서다. 또 양산 고려인마을의 지도자인 하나인교회 목사님과 사전 약속이 되지 않은 점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구글 검색을 했으나 연락처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경남 러시아어권 이주민들의 생활문화』 보고서에 나오는 러시아 상점 콜로속에 가면 고려인사회를 돕는 하나인교회 김동원 목사와 연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정중앙로 10번지 콜로속 상점에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김동원 목사님을 아느냐?” 고려인 부부가 알려준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문자로 ‘양산 고려인마을’에 온 이유를 알렸다. 그리고 전화했다. 사전 약속이 없었는데도, 또 사실은 선약이 있는데도 김동원 목사는 흔쾌히 우리의 방문을 환영했다. 걸어서 7분 거리의 교회 위치를 알려주었다.

최근 개업한 마카롱을 포함한 북정동의 고려인 상점들 <사진제공 양산 하나인교회>

‘고려인마을’은? 고려인이 모여 살고(대략 500명 이상) 상점가가 형성되고, 무엇보다도 고려인이 모일 수 있고 사회·문화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조/지원단체가 있어야 한다. 주지하듯이 고려인동포는 한국어를 상실했고 또 생업에 바쁜 탓에 스스로 자조(自助) 단체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많은 고려인이 자신의 역사를 잘 모른다. 왜, 한반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갔는지? 1920~30년대에 소비에트 고려인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 물론, 고려인동포와 함께 사는 한국인들도 고려인을 잘 모른다. 강제이주 이야기는 조금 알지만. 고려인의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서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왜, 한국어를 상실했는가? 고려인과 한국인, 같은 한민족이지만 상호이해가 필요하다. 전국의 고려인마을마다 한국인이 설립, 운영하는 ‘고려인 지원단체’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양산 고려인마을은 어떤 상황일까? 양산은 인근 산업도시(부산, 울산, 김해)와 인접하고 상당수의 공단이 조성되어 단순노무직에 종사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또 고려인동포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은 편이다. 『새로운 정착, 고려사람』에 소개된 고려인 식품점 스카즈카는 동양산 서창동에 있는 유일한 고려인 상점이다. ‘동양산’은 동남아 출신 이주민이 많은데 고려인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동양산 서창동의 고려인 상점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고려인마을에 가면 키릴 문자로 쓴 상점 간판을 읽는(보는) 재미가 있다. ‘작은 이삭’이란 뜻의 콜로속(Колосок) 간판은 처음이다. 소련 시기 자주 사용한 빵집 명칭이라 고려인동포에게는 친숙할 수 있겠다. 또한, 고려인마을에서는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고려인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양산에는 전문 고려인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콜로속 간판에 ‘고려인식당’ 글씨가 있으나, 편의점과 같이 간편식을 먹을 수는 작은 테이블이 전부다. 양산 고려인마을에서는 출근길 고려인동포의 아침 식사, 고기가 들어 있는 빵(삼각형 모양의 삼사와 유사)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택시를 타고 서둘러 부산(초량동)으로 떠나야 했다.

콜로속에서 빵으로 점심을 들고 있는 필자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