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고려인마을②] 구심체 역할, 하나인교회와 고려인마을학원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양산 북정동 고려인마을에서 러시아어 키릴 문자 간판을 ‘보고’,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음식을 ‘먹고’, 고려인의 한국살이 혹은 지원단체 활동가의 경험을 ‘듣고.’ 그런데 ‘듣고’가 잘 될까 걱정했다. 양산 일정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려인동포의 신앙 지도자이자 고려인청소년의 배움터인 양산 고려인마을 학원 대표인 김동원 목사와의 대화는 ‘특별’했다. 대한고려인협회 채예진 부회장도 양산을 떠나면서 “러시아어를 정말 잘 하시고 비전도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이야기했다.
양산 하나인교회 김동원 목사는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출신이다. 러시아어를 전공한 것은 러시아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러시아 파송 선교사가 아니라 러시아/CIS 지역에서 들어오는 고려인동포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주민을 섬기고 있다. 특별한 사례다. 사실 현재 한국사회는 ‘더 많은 김동원 목사’가 필요한 때이다.
양산 하나인교회 노인한글반에는 우크라이나 가정도 있다. 모두 여성인데 성경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함께 나들이도 하고 친자매들처럼 이웃사촌으로 나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모임이다. 양산에 들어온 고려인 노인도 대부분 한국살이에 힘든 자녀들의 자녀, 손자녀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고려인사회의 세대 간 돌봄은 더 특별하다. 강제이주와 정착, 끝나지 않은 재이주에서 더 끈끈해졌다. 올해 74세의 김라리사 할머니도 9년 전 한국에서 일하는 딸네 요청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손주들을, 지금은 손녀들이 자라 결혼해 아이를 낳아 증손주를 돌보고 있다.
양산 하나인교회는 북정동 고려인마을 동포가족의 피난처이자 안식처다. “다니엘(김동원) 목사님 러시아말 참 잘해요.”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려인마을 지원센터 운영자처럼 고려인동포의 일상생활을 돕고 있다. 임대서류 번역과 집주인과의 대화 통역, 그리고 은행·병원·행정기관 업무 등 고려인이 필요로 하는 곳에 늘 김동원 목사가 있다. 임금체불과 병원 등 다양한 통역 활동을 해온 목사로 귀환 고려인동포의 ‘주민권’이 온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한고려인협회와 청소년 진로 지도 합력했으면…
현재 양산 고려인마을에서는 양산초, 삼성초, 북정초, 어곡초와 삼성중학교에 고려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다. 고등학생도 있다. 한국 학교생활 적응이 어려운 고려인 청소년을 돕고 나아가 진로교육을 위해 ‘양산 고려인마을 학원’이 설립되었다. 마침 지난 2023년 1월 26일(목), 1월 31일(화), 2월 11일(토) 3차례 한국시티은행이 후원하고 JA(Junior Achievement) Korea에서 주관한 고려인학생 진로코칭교육에 양산 고려인마을 학생들도 참여했다. 1월 31일 프로그램은 서울견학(연세대, 게임회사 크레프톤)도 가졌다. 주변에 중도 포기하는 고려인 학생들이 많아지는데, 고려인 중고등학생에게 꼭 필요한 행사였다.
한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릴 고려인 청소년을 위한 진로·취업 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대학에 진학하여 한국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공부하거나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직업을 찾은 고려인 청소년들이 동생들의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고려인협회 채예진 부회장이 작년에 경기도의 지원사업으로 안산에서 가진 2박 3일 워크숍을 소개했다. 올해는 제천시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김동원 목사는 제천 워크숍 또한 수도권 고려인 청소년에게는 가능하나 지역은 어렵다고 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한 호남권, 부산과 경남 양산과 김해, 때에 따라서는 경북 경주 고려인마을까지 아우르는 영남권으로 나누어 진행함이 어떨까? 대한고려인협회와 지역 고려인마을이 협력하여 진행할 수 없을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고려인 청소년들. 중고등학교 연령대는 한국학교 적응이 어렵다. 교육 여건이 미비해 아예 편입이 거절되곤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편입이 가능한 안산, 광주, 인천 고려인마을 주변 학교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기숙사를 제공해주는 안성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찾고 있다. 양산의 고려인 중학생은 처음부터 직업을 찾기 쉬운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권할 수도 있다. 경상북도가 도내 55개 특성화고등학교에 CIS와 동남아 지역 중학교 졸업생을 입학시켜 (부모도 한국 초청해 일하게 하면서) 경북에서 공부하고 또 직장을 가질 방안을 준비 중이다. 경상남도도 고려인 청소년의 건강한 한국생활과 정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겠다.
주지하듯이 지금 한국은 인구감소 문제가 최대 현안이다. 경북 영천시, 충북 제천시, 전북 김제시 등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2(동포가족) 사업을 수행 중인 인구감소지역에서는 고려인가족의 이주와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고려인동포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한고려인협회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과 관련, 지역의 고려인마을에서 지원활동을 펴고 있는 NGO 등과 협력해 고려인 동포가족의 ‘한국살이’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또 협력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