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고려인마을①] “여기 한국 맞아? 중앙아시아 아님 동남아?”
고려인 정체성 보여주는 간판들 즐비해 ‘흐믓’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19년 10월 필자는 동료들과 함께 아시아발전재단 지원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지방의 고려인마을을 방문하면서 경기도 안산(원곡동)과 화성(향남) 외에도 상당한 규모의 아시아거리가 형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80여 개국 출신 이주민들이 사는 김해시 동상동 외 일대였다. 그런데 다시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남리와 북리) 또한 한국 속의 아시아거리(다문화 공간)로 기록하기로 했다.
대구 논공초등학교 이태윤 교사가 발품을 팔아 ‘논공의 다문화공간’ 구글 지도를 제작했다.(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exY8DFsrSq1f0P71SbqBPpgk08u8Xdc&usp=sharing)
러시아어권 식당과 상점이 12곳, 베트남 식당과 상점이 9곳, 태국 식당과 상점이 6곳, 기타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과 캄보디아 등 다국적 식당과 상점이 13곳이 표시되어 있다.
또 노동운동단체와 러시아어로 예배하는 주님의은혜교회, 알 힉마 논공 무슬린센터(파키스탄 중심), 마하매우나워사원(스리랑카 불교) 등의 종교기관도 빼놓지 않았다. 안산, 화성, 김해 다음으로 큰 규모의 다문화 공간이 아닐까?
그런데도 필자는 <한국내 고려인마을 지도>에 ‘달성군 논공읍 고려인마을’을 넣었다. ‘김해시 동상동 고려인마을’과 같은 맥락이다. 논공읍의 경우, 논공초등학교와 북동초등학교의 다문화 학급 어린이의 다수가 고려인 아이들이다. 고려인동포는 가족과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논공에서만 6년간 다문화, 특히 고려인 학생을 가르쳐온 이태윤 교사와 고려인 상점을 찾아보는 마을투어를 가졌다. 논공초등학교에서 출발한 우리는 실크로드, 구르만, 탄드르, 임페리아 등 모두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품점과 식당 위주로 둘러보았다. 실크로드(Silk Way)와 탄드르(우즈벡 ‘화덕’), 임페리아에서는 편의점 식으로 간편식을 먹을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인천과 김해 등 다른 지역에서는 식당 간판인 구르만(‘미식가’)이 달성 논공읍에서는 수제햄과 소세지를 파는 식품점이다.
고려인마을에서 레표시카(лепёшка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인 납작하고 둥근빵)와 삼사(самса 고기만두)를 구워 파는 탄드르(тандыр, Tandir) 간판을 처음 본 것이 2021년 6월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이다. 이후 안산, 인천, 광주 등 고려인마을에 탄드르 간판이 많아졌다.
인천과 안산, 광주에서 본 레표시카, 인천과 청주에서 본 멜니차(мельница 방앗간, 풍차)도 그렇지만 탄드르 간판 또한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지금도 고려인마을마다 ‘타슈켄트’ 간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오사카 이쿠노 코리아타운에서 봤던 ‘경남상회’와 같다. 자신이 타슈켄트와 경상남도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간판이다.
근래 고려인동포들은 상점 간판을 장소 이름보다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살 때 익숙했던 상품 혹은 상점 이름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언어 경관(linguistic landscape)인 상점 간판을 읽는 고려인마을 탐방은 ‘보고’ ‘듣고’ ‘느끼는’ 즐거움이자 이로움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
이태윤 교사와 약속한 저녁 식사를 어디에서 할까? 카페 알리나? 우즈벡 사람이 운영하는 오시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 한글로 쓰인 우즈벡 식당 오시요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라그만(고기국수)을 먹고 싶었다. 음료는 러시아에서 많이 먹었던, 몸에 좋은 발효 유제품, 케피르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논공9길과 논공21길이 만나는 곳에 주님의은혜교회(러시아어 간판 병기)가 눈에 들어왔다. 소련 시기 고려인동포는 중앙아시아에서 살면서도 무슬림이 되지 않았다. 1990년 한소(러시아)수교와 또 소련 해체 이후 1992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 나라와 한국의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고려인동포는 한국과 북미와 유럽에서 들어온 한인선교사와 만나면서 기독교 신자가 된 분들이 많았다.
안산과 시흥, 인천, 김해, 청주 등 고려인마을에는 아예 고려인 목사가 운영하는 교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한국인 목사가 통역설교로 고려인 신도를 이끄는 교회도 많은데, 양산의 하이난교회 김동원 목사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설교하고 있다. 통역설교든 러시아어 설교든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에 신앙생활은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서울 노량진 기독교TV에서 개최된 제16회 국제이주포럼의 주제 ‘초국가 시대의 이민정책’에서도 한국에 사는 이주민 선교의 중요성을 여러 발제자가 강조했다. 아직 고려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은 논공의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에 대구의 기독교계가 이주민선교로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