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부동 고려인마을④] 국내 거주 고려인도 ‘노인복지’ 시급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근래 영주(F-5) 비자를 가진 고려인동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국적까지 취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일정 정도의 연간 수입도 필요하고 또 한국인도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손주를 돌보기 위해 들어온 노인들이 국적을 취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국적이 없으니 경로당도 이용할 수 없다. 물론 중국동포도 그러하지만, 고려인동포도 경로당에서 한국 노인들과 아울리기 쉽지 않다.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이 적은 영주 귀국 사할린 한인동포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땟골 고려인마을에서 제비봉사단 활동을 하는 고려인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 8월 26일 용산고교 친구들과 먼저 땟골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센터를 찾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10명이 넘는 봉사단 중에 이예다(73)씨와 이타마라(69)씨 두 사람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역사관을 둘러본 후, 땟골 삼거리의 모퉁이(우갈록) 카페를 찾았다. 우갈록은 선주민과 고려인주민이 함께 만든 땟골의 사랑방으로 2015년 들어섰다. 그동안 고려인 청소년 카페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손주를 다 키운 제비봉사단 고려인 여성들이 상설 나눔 바자회를 운영하면서 땟골을 찾는 손님들에게 고려인 음식도 만들어 대접하곤 한다.
우리 친구들이 71세, 72세이니 50년 전 그룹 미팅 생각이 났다. 고려인 식당에서 고려국수와 샤실릭, 샐러드 등 고려인 음식을 나누면서 대화했다. 두 사람 모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출신으로 2012년 땟골에 왔단다. 놀랍게도 이 둘은 타슈켄트에서는 만난 바가 없는데, 바로 땟골에서 만나 의지하며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처음 땟골에 왔을 때 거리에 쓰레기도 많았어요. 동네가 조금 무서웠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마을이 깨끗해졌어요. 손주들도 다 크고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하려고 해도 너무 비싸서 어려워요. 이제 땟골은 우리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어요.”
이예다 할머니는 손주가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늘 마음이 불안하다. 손주가 한국사회에서 전문직업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자신이 아프고 병들면 짐이 될까 더 걱정이다. 그래서 건강관리에 더 신경 쓰고 있다. 제비봉사단에 나와서 함께 일하고, 특히 한국인 방문객을 만나는 일이 그래서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사실 근래 봉사단원 한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자녀는 일하러 공장에 가야 했다. 자연스럽게 제비봉사단 여성들이 병원에도 가고 간호도 해주고 있다. 건강한 노인이 몸이 아픈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돌봄’이 고려인마을 땟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 7월 6일 (사)동아노인복지연구소 김익기 소장과 땟골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하나요양원을 운영하는 윤정숙 대표와 함께 땟골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했다. 당시 김영숙 센터장이 땟골에도 고려인 어른이 많아졌으며, 요양보호사의 정기 방문을 받는 고려인 어른도 있다고 했다.
노인복지가 중요해져 요양보호사가 필요함을 많이 절감해온 하나요양원이 부설 동아요양보호사교육원을 시작했다. 전철 4호선 안산역과 정왕역 사이에 있는 신길온천역에서 2분 거리다. 근래 수도권도 수도권이지만, 지방에서 요양보호사를 구하지 못해 좋은 시설에 적은 인원만을 수용하고 있다. 실제 시설 수용인원 2.3명당 1명의 요양보호사 필요하다.
평소 고려인의 한국 정착에 관심을 기울여온 윤정숙 대표가 요양보호사가 되려는 고려인동포에게 수강료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중국동포가 일을 많이 해왔다. ‘가족돌봄’ 전통이 특별한 고려인사회에서 근래 부모의 병간호를 위해 일을 접고 출국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에 50대 고려인 여성 중에서 요양보호사 일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듯하다. 물론, 240시간 교육 후에 시험에 합격해야 요양보호사가 될 수 있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중국동포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수원시중국동포협회 노순자 회장도 있다.(<동포세계신문> 2022-3-1 ‘사회복지사 도전하는 노순자…”소외된 조선족 노인문제에 관심”’ 기사 참조)
요양보호사 일은 ‘힘든’ 직업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일자리가 많다. 무엇보다 고려인 어른들을 돌볼 수 있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 고려인 어른들은 고려인 요양보호사가 일하는 요양원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