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희동 고려인타운②] 한국 도착 고려인이 가장 먼저 찾는 곳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근래 고려인 가운데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연고지가 있는 전국의 고려인마을로 간다. 그래도 광희동은 변함없는 ‘고려인의 정거장’이다. 특히, 처음 한국에 오는 고려인은 먼저 광희동 동대문외국인정보센터(센터장 김준태)에 들려 비자 문제를 해결하고 전화를 개통한다. 이어서 일자리를 알아본 후에 지역의 고려인마을로 이동한다.
물론 아예 광희동과 이웃 장충동에서 사는 고려인들도 1천여명에 이른다.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몽골타운은 사실은 ‘광희동 고려인마을’이기도 하다. 2023년 10월 10일 연휴 다음날 김준태 소장은 점심도 거른 채 온종일 고려인과 사할린 한인의 비자 상담에 응해야만 했다.
광희동은 처음에 러시아 무역상들이 왕래하던 ‘러시아타운’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 외국인고충처리 담당 업무를 수행하던 김준태 조사관은 러시아 유학을 다녀왔다. 김준태 조사관은 중국동포와 달리 고려인동포는 한국어를 상실해 상담요청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2014년 김준태 조사관이 광희동 주민센터를 빌려 외국인(고려인)을 위한 주말한글학교를 시작한 배경이다. 러시아를 전공하는 교수와 학생 등 자원봉사자들 도움을 받아 2년 정도 한글교실을 운영했다. 어려움이 많았다. 장기체류자보다는 유동인구가 많아 수준별 한국어학습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려인을 위한 한글교실과 정보센터 운영을 위해 그는 국가공직도 사임했다.
(사)동북아평화연대가 2018년 8월 서울 지역 200명 고려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려면, 고려인들의 한국 이주 목적은 첫째가 돈 벌기 위해서(58.8%), 둘째가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16.5%), 셋째가 공부하기 위해서(15.2%) 순서였다.
이미 고려인동포가 ‘귀환’ 동포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고려인동포에게 한국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한국어 소통이었다. 63%나 차지했다.
이에 (사)동북아평화연대도 2018년 9월 9일 동대문외국인정보센터 사무실 맞은 편에 동대문고려인한글학교를 개교했다. 특히,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을 돕다가 희생되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소련 해체 후 다시 불안하게 떠돌며 사는 고려인들의 선조들을 추모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추모제를 매년 9월 9일(1937년, 강제이주 시작일)에 지내기로 하여 2018년 제2회 추모제 봉행과 함께 동대문 고려인한글학교 개교식을 연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한글학교는 다시 문을 닫았다.
광희동에도 고려인지원센터 절실
2017년 10월 20~21일 중구청은 광희동 일대에서 ‘서울 실크로드 거리축제’를 열고 중앙아시아거리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렸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러시아, 몽골까지 6개국 사람들이 참여했다. 서울시 주민참여 예산사업으로 ‘서울의 중심, 중앙아시아를 즐기다’ 주제로 열렸는데, 이후 광희동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필자도 우즈벡인이 운영하는 사마르칸트와 몽골타운 건물에 있는 울란바타르 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광희동의 주체는 고려인이다. 광희동에도 아리랑 등 고려인 식당이 세 곳 있었다. 아리랑 식당도 2014년 문을 열었다고 한다. 고려인 주인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외국인입니다.” 가족이 모두 한국에 왔고 한국에 살고자 하는데도 아직도 자신을 ‘외국인’이라고 하는 고려인. 이제 고려인동포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광희동에서 10년 일해온 동대문외국인정보센터 김준태 센터장과 아리랑식당에서 고려국수와 양고기 꼬치구이(샤실릭)로 점심을 같이했다. 고려인의 정거장인 광희동에도 한글교실을 운영하면서 ‘고려인동포들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고려인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데에 김준태 센터장도 동의했다. 아니 그가 준비하고 있었다. 필자는 광희동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의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