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희동 고려인마을①] 고려인동포 첫 삶터, 몽골타운도 형성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 관광안내도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배명숙의 연구(<동대문 고려인 커뮤니티의 현황과 변화>, 2017)에 따르면, 서울에서 100명 이상의 고려인이 사는 지역은 중구(820명), 동대문구(229명), 용산구(162명), 그리고 관악구(118명)다.

중구에서도 특히 광희동에 많이 사는데,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만나는 중앙아시아거리가 중심이다. 서울에 처음 오는 고려인들은 광희동과 장충동 인근의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보증금 300만~500만원에 월세 30만~50만원 원룸에 들어간다. 원룸에는 부엌과 욕실이 있어 부부나 가족이 살 수 있다. 동국대 등 주변의 대학생과 동대문 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등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광희동보다는 동대문이 더 친숙한 ‘동대문 고려인 커뮤니티’는 1990년 한러 수교 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무역상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시장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형성되었다. 러시아어 거리 간판이 늘어났고, 기초적인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고려인들은 동대문 평화시장 의류도매상 등에서 일하면서 러시아어 통역으로 일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 의류의 품질이 좋아 장사가 잘되어 자신의 가게를 차린 고려인들도 나왔다. 그러나 중국 제품 품질이 점차 좋아지고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러시아 무역상들이 철수하고 러시아회사 주재원들도 떠났다. 대신에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사람들과 고려인들, 그리고 같은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몽골 사람들이 늘어났다. 중앙아시아거리·몽골타운으로 변모되어 갔다.

고려인마을에서 만나는 임페리아 푸드(IMPERIA FOODS)

고려인들은 처음에는 한국인과 동업을 하거나 한국인 배우자와 사업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F4) 비자를 취득하면서 사업주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세금 신고만 제대로 하면, 구소련에서와 같이, ‘괴롭히는(감독) 기관’이 없는 점이 너무 좋았다.

동대문 고려인 커뮤니티의 형성은 고려인 가족이 운영하는 러시아 식품 도매상의 출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 식품점이 생기면 한인타운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2019년 필자가 ‘원곡동 사람’ 이야기에서 만난 김넬리 가족이 운영하는 임페리아 푸드(IMPERIA FOODS)다.

<원곡동 사람 이야기> 김넬리 편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3세 김넬리 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00년. ‘가족을 대표해’ 먼저 한국에 왔다. 한국이 어떤지 생활해보고 가족도 나오게 할 생각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 거주한 곳이 바로 서울 동대문(광희동)이다. 고려인,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들은 것이다.

한국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 법원 등에서 일을 해온 그녀에게 식당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장충동 남산 아래로 가서 홀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어서 남편 바실리가, 넬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1살짜리 막내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부부는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 10층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일했다.

여관비조차 아끼는 등 생활비를 줄이려고 찜질방에서 서로 떨어져 잤다. 2003년 투자(D-8) 비자를 받고 합법적인 신분이 된 부부는 마침내 2006년 광희동에서 최초의 러시아 식당을 열었다. 오늘날 광희동의 명소가 된 사마르칸트 식당은 훨씬 후에 생겼다. (<동포세계신문> 2019-6-26 「[원곡동사람] 고려인 제1호 기업 임페리아(IMPRERIA) 그룹 김넬리 가족 이야기」)

광희동 임페리아 푸드

‘넬리-바실리’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양꼬치 샤슬릭이 아주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 안산의 고려인들이 소문을 듣고 모두 동대문에 올 정도였다. 인천에서도 많이 왔다. 식당이 아주 잘 되었다. 그런데 2~3년만인 2010년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광희동을 떠나 안산시 원곡동으로 들어갔다.

4형제 아들과 함께 넬리 부부는 상가 2층 작은 공간을 얻어 임페리아(IMPERIA) 상호를 붙이고 물만두를 빚고 레표시카(лепёшк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2층인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임페리아는 온라인 상점, 카페 베이커리, 주류 수입, 항공편 및 여행 등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매장 이름도 임페리아 푸드(IMPERIA FOODS)로 바꾸고 전국의 고려인마을로 매장을 확대해 나갔다. 러시아/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품과 술과 음료 등을 판매하는 편의점 기능을 갖추었다. 레표시카 등 주요 제품은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맛이다. 날마다 냉동 생지(生地)를 전국의 임페리아 푸드 매장에 보급하기 때문이다. 반죽 상태이니 각 매장에서 굽기만 하면 된다.

광희동을 찾은 한아찾 탐방단. 왼쪽부터 정성철, 이현지, 양지윤, 아지르 수렝.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를 나서면 중앙아시아 여러 도시 이름의 이정표 기둥을 만난다. 중앙아시아거리-몽골타운을 찾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이다. 또 얼마 전에는 즉석에서 레표시카와 삼사 등을 구워 판매하는 탄드르(화덕) 빵집도 생겼다. 우즈벡 청년이 만드는 레표시카를 사가는 주 고객은 고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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