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고려인 한국정착에 꼭 필요한 책 ‘함께 하는 고려인 이야기’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2년 4월 7일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최재형 순국 102주년 추모식 겸 제3회 ‘최재형 상’ 행사를 개최했다. 그날 영예의 ‘최재형 상’을 아시아발전재단 김준일 이사장이 수상했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지원으로 널리 알려진 최재형 선생은 고려인동포를 위한 학교를 세우는 등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시베리아의 페치카(난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는데, 김준일 이사장 또한 300억원의 사재로 아시아발전재단을 세우고 고려인 지원단체 후원, 고려인 학생 장학금 지원, 국내 체류 고려인 동포의 언어 문제 해결을 위한 무료 한국어 강의 교재 배포 등 재단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날 김준일 이사장은 “고려인 동포들이 국내외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동포 청년들이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지난 5월 아시아발전재단 상임이사인 방송대 조남철 전 총장이 전화했다. “재단은 2024년부터 고려인과 탈북민, 다문화 가족을 위한 지원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근래 고려인의 한국입국이 크게 늘었는데,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의 한국살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책자를 간행하고자 한다. 1부 고려인 이주사, 2부 한국생활 상담사례, 3부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도 함께 묶을 예정인데, 고려인 이주사 편 ‘감수’를 맡아 달라.”
1, 2부 집필자들이 모였다. 러시아어 번역 분량을 고려해 고려인 이주사는 50~60쪽, 상담사례는 20~30쪽이 적절할 것으로 논의되었다. 필자는 집필자들에게 연대기적인 서술보다는 고려인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1920~30년대 연해주 시기와 중앙아시아 시기 고려인의 삶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감수만 맡기로 했는데, 필자가 고려인 이주사 부분을 썼다. 고려인의 귀환(연해주와 한국) 부분은 연해주와 안산에서 고려인의 정착과정을 돕고 참여한 김승력 저자가 1차 작성하고 필자가 보완했다.
3개월로 예정했던 시간이 6개월 걸렸으나, 마침내 <함께 하는 고려인 이야기>(아시아발전재단·북코리아, 2024) 책이 완성되었다. 러시아어 번역도 감수를 받았다.
아래는 아시아발전재단 조남철 상임이사가 쓴 발간사 일부이다.
“19세기 말 국력이 쇠약했던 조선인으로 태어나, 살기 위해 낯선 남의 땅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조선을 잊지 않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맞서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귀한 것들을 서슴없이 내어준 이들이 바로 고려인, 고려 사람인 것이다. 특히 1937년의 연해주 강제이주는 우리 근대사의 가장 뼈아픈 상처일 것이다. (…) 아시아발전재단(ADF)은 고려인 동포들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를 돕고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책, 그런 책을 발간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번 ADF 총서 3권의 발간 목적이다.”
3인의 필자들도 각기 출판의 의의를 정리했다. “160년 전 연해주로 떠난 한인들, 어떻게 살면서 ‘소비에트 고려사람(고려인)’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가?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한 중앙아시아에서는 어떻게 살았나? 왜 다시 러시아 연해주로, 또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고 있는가? 1부에서는 코리안이 알아야 할 고려인 이야기를 함께 읽는다.”(임영상)
“중앙아시아 시기에 한국어를 상실했기 때문에 또 한국의 생활문화가 낯설 수밖에 없어서 ‘귀환’ 고려인들은 자연스럽게 모여 살기 시작했다. 안산시에 있는 야학과 상담을 위한 공간인 고려인 센터 ‘너머’에 고려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2부에서는 한국살이를 시작한 고려인들의 상담사례를 주제별로 정리했다.”(김승력)
“이 책의 3부는 아직 한국어를 읽을 수 없는 고려인의 한국살이를 돕기 위한 부분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연구를 위해 고려인과 함께 살면서 고려인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한국어 일상회화 책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알았다. 고려인의 한국살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정막래)
<함께 하는 고려인 이야기>는 한국어 소통이 어렵고 한국의 생활문화가 낯선 고려인의 한국살이 생활 가이드가 되기에 유용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 사는 고려인은 형편만 된다면, 조상의 나라 한국에 정착하려는 귀환 동포이다. 특히, 1920~30년대 연해주 고려인의 삶은 특별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보다 더 민족어로 공부하고 문화와 예술을 즐겼다. 현재도 고려인이 많이 사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유적지에 한국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반드시 읽고 한국 친구들과 당당히 어울리면서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