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미르’ 김승력 대표 고려인의 안산 ‘소프트 랜딩’ 열정 지원으로 훈장까지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한 김승력 대표(오른쪽) <사진 EKW>

고려인지원센터 ‘너머’에서 ‘미르’로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10년 13년간의 러시아 연해주 활동을 정리하고 김포에서 생활하던 김승력씨는 안산 땟골에 고려인이 모여 사는 소식을 접했다. 러시아어가 유창한 김승력씨는 ‘코리아에서 코리안이면서도 외국인으로 힘들게 사는’ 고려인동포를 돕고자 땟골 삼거리 지하방에 고려인을 위한 한글 야학교실을 열었다.

2011년 10월 ‘너머’의 시작이다. 2016년 국회에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 지원을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국비 3억원을 포함, 10억원의 예산이 확보되어 선부동에 고려인문화센터가 준공되었다. 고려인지원센터 ‘너머’는 현재 고려인문화센터에 자리하고 있다. 안산시가 4명의 활동가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선부동 땟골과 또 다른 안산의 반대편인 안산시 상록구 사동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인근의 원룸 빌라촌에도 고려인마을이 형성되고 있었다. 사동에서 땟골 한글교실에 다니는 고려인이 늘어났다. 김승력씨는 사동에도 야학을 열어달라는 고려인들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 2014년 사동의 지하방에 너머의 ‘분원’을 열었다.

‘너머’에서 ‘미르’로 변신한 고려인지원센터 

2016년부터 아시아발전재단의 지지와 후원으로 고려인센터 ‘미르’(Мир)로 새롭게 출발했다. 러시아어 ‘미르’는 평화와 세상을 뜻한다. 세상이 평화로 불리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시민들의 뜻을 담고자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미르는 2018년 5월 어린이돌봄센터를 별도의 건물에서 새롭게 개원했다.

김승력은 2018년 20년간 고려인 동포를 지원해온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 2019년 안산시 표창장과 2021년 독립운동가 최재형 활동가상을 수상했다. 미르는 2020년 12월 야학교실과 돌봄센터를 현재의 건물로 통합했고, 2021년부터 방과 후 초등학생 돌봄센터를 안산시 다함께돌봄센터 사업인 ‘해양가치키움터’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안산시에 지속해서 요구했다.

“안산지역에 국내 거주 고려인이 가장 많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데도 실태조사가 진행된 바 없다. 고려인의 안정적인 생활 및 자녀교육, 민족의식과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정책수립 기초자료가 필요하다.”

마침내 2019년과 2021년 고려인센터 미르는 원곡초등학교 돌봄교사와 안산다문화도서관장을 역임한 김기영 박사에게 의뢰해 ‘경기도 안산시 거주 고려인 실태조사’를 수행했다. 통계조사를 위한 문항을 개발하고 이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19세 이상 고려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으며, 총 346부를 수거해 306건을 분석했다. 한국어 능력, 일자리와 취업, 거주유형, 자녀 양육 및 교육, 국적 및 영주권에 관한 인식, 안산거주 만족도 등을 조사했다.

안산거주 고려인 실태조사와 전북연구원 연구팀 방문

2024년 5월 11일 ‘재외동포 정착지원 및 지역특화형비자 확대 방안 연구’를 수행 중인 전북연구원 이주연 박사팀이 고려인센터 미르를 방문했다. 안산 고려인 실태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관련, 고려인 동포가 전북으로 이주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에는 고려인들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 안산에 와서 근로하다가 일정 기한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본인 입국 후 가족들을 불러와 함께 거주하며 자녀들의 미래와 가족의 노후를 함께 고려하는 ‘정주형’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안산시에서도 고려인들을 노동력으로 볼 것만이 아니라 안산에 살러 온 동포로 대하는 지원정책으로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 한국 이주를 결심하는 데는 경제적 이유, 자녀교육 문제, 더 나은 삶에 대한 선택 등 다양한 요인이 있으나 결국 이들이 이주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결정적 계기는 사회적 네트워크였다. 먼저 한국에 와있는 가족, 친척 등 네트워크를 통해 이주에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얻고, 위험부담을 덜고 주거비용을 감소시켜 경제적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심층 인터뷰 참여자들 역시 엄마나 남편, 언니들이 먼저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그 가족 네트워크를 통해 본국에 있던 자신들이 시차 이주를 선택한다. 이들은 본국과 이주국 간에 자본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본인의 이주 후에도 본국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초국가주의적 생활세계를 구축한다. 이들이 가진 사회적 네트워크는 중요한 자본이 된다. 정보, 유대감, 신뢰, 상호호혜성 등은 이주국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2021년 경기도 안산시 거주 고려인 실태조사’, 20쪽, 28쪽)

천타치아나 교사가 성인야학교실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김승력 대표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수도권의 고려인 동포 가족의 전북 이주는 어렵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성인야학교실에서 고려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천타치아나 고려인 교사도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내용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녀는 한국생활 13년 만에 한국인도 ‘어려운’ 귀화시험까지 합격한 상태인데, 가족(재외동포 F-4 비자인 남편과 두 자녀)의 영주권취득을 위해서 전북 이주도 가능하다고 했다.

‘2021년 경기도 안산시 거주 고려인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고려인의 안산 이주 계기는 다른 곳, 특히 인구감소지역 지방 도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일자리 알선 144명(49.3%) 둘째, 자녀교육지원센터 72명(24.7%) 셋째, 한국어교육지원 30명(10.3%) 넷째, 통·번역 및 문화생활 지원이 각각 22명(7.5%)로 나타났다.

고려인 동포는 자녀의 방과 후에도, 부모의 퇴근이 늦어지는 야간에도, 주말 특근 시에도 자녀 돌봄이 가능한 ‘센터’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할 것이다. “체류자격이 만료되면 다시 연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안산 고려인은 264명(86.8%)이 연장할 것이라고 답했다.

‘귀환’ 동포로 한국에서 삶터를 일구고 싶어 하는 고려인동포를 함께 살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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