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고려인동포 정착 지원은 교회의 시대적 소명”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지난 4월 25~26일 서머셋팰리스 서울에서 개최된 ‘2024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워크숍’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남 양산의 하나인교회·양산고려인통합지원센터(김동원 목사)에서 소식을 보내왔다. 당시 필자는 ‘외국국적동포(중도입국 동포 청소년) 현황 및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김동원 목사가 보내온 내용은 이랬다.
“센터가 돌보는 고려인 학생 중에 5명이 학교에서 자퇴 혹은 휴학 중이거나 상급학교에 미진학 상태로 있는 아이들입니다. (…) 높은 언어장벽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자 공교육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자퇴를 안 했을 뿐이지,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상급학교 진학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치료와 함께 실제로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진학 및 진로지도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 ‘조상의 나라’ 한국에 들어온 중도입국 고려인 청소년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때다. 그나마 초등학교 연령대는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지도하는 교사들 덕택에 ‘외견상’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한국학교에 적응할 수 없는 연령대의 청소년이다.
2023년 6월 26일 필자는 CTS기독교TV 강당에서 개최된 제16회 국제이주자포럼에 참여했다. 1세션의 ‘사회통합을 위한 정부 이민정책’과 2세션 ‘유학생 정책과 유학생 선교’ 발표 내용에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소개되고 이주민 선교에 대한 적용을 다루었다. 요컨대 ‘한국인들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라는 아젠다를 실행하기 위해 ‘우리의 필요에 따른 이민정책에서 이민자들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민정책’으로 나아가는 데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후 1년이 흐른 지난 6월 24일 개최된 제17회 국제이주자포럼에서는 지난 30년간의 국내 이주민 사역을 돌아보면서 한국교회가 이주민 사역을 새롭게 튜닝(tuning)해야 할 때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안성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교회에서 대안학교로
필자는 2021년 6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전국의 고려인마을을 다니면서 안성의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다른 고려인마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자리와 저렴한 주거를 찾아 이동하는 고려인의 한국살이에 10대 청소년교육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5~6년 동안 가끔 전화만 하시다가 느닷없이 전화로 ‘비행기 표 사놓았으니 한국에 와라’고 하시다니…”
기초 한국어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채, 한국에 들어온 고려인 학생들이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성경 속의 엘리야 선지자가 지쳐있을 때 로뎀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회복했듯이, 2019년 소학섭 목사는 한국살이에 힘든 고려인 청소년들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교회를 학교로’ 바꾸었다. 인근 아파트를 빌려 기숙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안성과 평택, 아산과 천안 외에 멀리 인천에서도 오고 있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일요일 예배 후부터 목요일까지 오전에는 등급별 한국어 수업, 오후에는 동아리 활동과 진학 및 진로지도를 하고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도록 자유 시간이다. 2022년 학교설립 3년만에 공식적으로 ‘대안학교’가 되었다. 경기도교육청이 로뎀나무학교에서 6개월 공부한 학생에게 ‘학적(學籍)’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로뎀나무학교에서 공부한 고려인 학생은 한국 고등학교 편입학도 가능해졌다. 취업자는 물론이고 대학진학자도 나왔다. 현재 기숙사 시설을 갖춘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교회인가? 센터인가? 학교인가?
경남 양산시 북정동 고려인마을의 양산하나인교회는 러시아어로 예배를 드린다. 신도의 절대다수가 고려인이다. 교회가 운영하는 양산고려인통합지원센터 업무가 훨씬 비중이 크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고려인 학생의 진로지도 때문이다.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의 경주하이웃교회도 양산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이웃이주민센터는 이주배경청소년교육을 담당하는 레인보우스클(Rainbow School) 프로그램을 ‘우리작은도서관’에서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의 동포체류지원센터로도 지정되었다.
주변에 고려인마을도, 다문화가정도 없는 전주혁신도시에 있는 전주장동교회는 사회(다문화)선교에 모범이 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한국어교실과 호스트패밀리 활동, 다문화가족 자녀를 위한 전북글로벌유소년축구단(교회건물 옥상에 풋살장 설치), 그리고 전북교육청의 대안학교로 지정된 전주글로벌시민학교 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시민학교는 중도입국 학생을 위한 한국어반, 인공지능코딩수업, 미국 고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SOT(School Of Tomorrow) 영어교재를 사용한 학생의 자기주도적(自己主導的)인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장동교회 김태영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4월 26일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의 서울 워크숍에서다. 5월 14일 전북백년포럼과 전북연구원 조인트세미나에서 만나고 당일 장동교회로 이동해 대화를 가졌다. 그는 인구절벽시대 다문화 선교가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국어 2급 정교사 19명, 알바트로스 한국어 강사 35명이 있는 장동교회는 전북자치도에 사는 이주민의 한국정착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7월 10일 다시 장동교회를 찾아 김태영 목사를 만날 예정이다. 마침 그날 낮에 익산시에서 ‘시장님과 함께하는 외국인정책 전문가 차담회’가 열린다. 익산시는 이미 이주민을 맞이하는 글로벌 익산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즉 2019년 익산시다문화이주민+센터를 개소하고, 2021년엔 익산글로벌문화관 개관, 2023년에는 제3회 VFAK(Vietnam Football Association Korea) 동향컵 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익산시는 전북자치도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북자치도에는 ‘귀환’동포·외국인집거지가 부재했다. 이제 이주민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외국인(이민) 정책 시대에 전북자치도의 동포(고려인)마을 조성에도 전주 장동교회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