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영천 고려인마을⑤]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과 경주·영천 고려인동포
다문화 이주민 정책포럼과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지난 2월 21일(화)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와 이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다문화 이주민 정책 포럼이 열렸다.
자료집에 보니 주최측인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 김병수 회장(김포시장)의 개회사, 협의회 부회장 2인(최호권 영등포구청장, 박병규 광산구청장, 고문 1인(임병택 시흥시장), 이민정책연구원 손홍기 부원장과 주관인 주관인 김민석·맹성규·최춘식·최재형 국회의원 등 8인의 환영사, 그리고 축사가 주호영 국화의원 외 18명 국회의원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이재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 모두 21명이었다.
자료집의 절반이 개회사, 환영사, 축사였는데, 여기에 토론자로 시대전환 조정훈 국회의원까지 국회의원만 24인이 참여했다. 환영사와 축사에 많은 국회의원이 들어간 것은 전국다문화도시협회에 속한 도시의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고, 저출산·고령화 시대 이주민 정책이 중요해졌기 때문으로 보였다.
이민정책연구원 조영희 박사가 ‘사회통합적 다문화 정책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지자체의 외국인주민 정책이 기존의 다문화정책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민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2022년 하반기에 시작한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중앙과 지방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방 중심의 능동적 이민정책의 첫 시도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날 참여한 국회의원의 지역구 중에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에 해당하는 89개 인구감소지역에 속한 지방은 부여·청양군(정진석 의원)과 태안군(성일종 의원) 두 곳뿐이었다.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은 인구위기에 대응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두 트랙(Two Track) 이민정책으로 유형1(지역 우수인재)과 유형2(동포가족)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우수인재(유학생)와 동포가족이 인구감소지역에 정착하면 체류 특례를 부여하는데, 우리 정부의 비자 정책이 1인에서 가족정착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종전과 다르다.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은 두 차례 공모사업을 통해 현재 6개 광역시의 24개 시군구와 대구광역시 남구, 경기도 연천군과 가평군, 경상남도 고성군 등 총 28개 기초지자체가 사업을 진행 중이다. 추가공모사업 지자체 선정은 12월 6일에 이루어졌지만, 사업은 2022년 10월 4일부터 2023년 10월 3일까지 1년이다.
2022년 10월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아시아발전재단이 <아시아엔>과 엄태영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개최한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유형2)과 ‘고려인 콜호즈’ 토론회에서 “고려인동포와 인구감소지역 ‘고려인 콜호즈’ 조성” 주제로 발표한 필자는 특별히 경상북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추가공모로 사업을 시작한 충청북도의 사업 진행을 주목하고 글을 써왔다. (<아시아엔> 2022-10-29 「[토론회 후기] 인구감소지역에 ‘고려인 콜호즈’가 조성된다면」 외)
‘비자 혜택’을 받고자 영천으로 이주하려는 고려인동포
지역특화형 사업이 한참 진행 중이지만, 필자가 관심을 가져온 유형2(동포가족)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먼저, 경북이다. 지난해 10월 27일 국회 토론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주 고려인마을 장성우 고려인협동조합 이사장이 연락했다. 경주 고려인마을서 지역특화형 비자 혜택을 받으면 인구감소지역인 이웃 영천으로 이주할 수 있는 고려인동포들이 많다는 것이다. 경주의 고려인동포 중에 비자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고려인에 관한 보도를 필자도 읽은 바 있다. (<단비뉴스> 2020-12-21 「“쫓겨서 떠났는데…돌아오긴 더 힘들어요”」) ‘방문체류’ 고려인 3세 김스베틀라나 이야기였다. 스베틀라나는 2019년 2월 세 번째 조국 땅을 밟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 나라에 와서 살겠다는 일념으로 3년짜리 방문취업(H-2) 비자를 받고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카자흐스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도 포기했다.
김스베틀라나와 같은 고려인이 영천으로 이주해 2년 이상 산다면 선(先) 재외동포(F-4) 비자를 받고 H-2 비자 상태에서 해온 생업을 계속할 수 있다. 또, 경주에는 취업할 수 없는 방문동거(F-1) 비자인 배우자와 사는 고려인가족도 상당수다. 바로 이들이 경주에서 영천으로 이주해 유형2 사업 해당자로 등록하고 법무부의 허락을 받으면, 안정적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다는 판단에 장성우 이사장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이다.
“왜? 경주 고려인을 타지로 보내려느냐?”고 오해도 받아가면서 장성우 이사장은 경주 고려인을 만나고 영천시도 방문하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천시에도 2021년 현재 119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성우 이사장 등의 주선으로 영천 고려인 일부가 모이기도 했다. (<아시아엔> 2022-12-14 「2023년 경북 영천과 충북 제천에 ‘고려인마을’이 생길 수 있을까?」)
영천시는 인구 증가라는 생각에서 환영했다. 그러나 유형2 사업은 동포 스스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신청해야 했다. 결국, 일자리를 알아보고 거주지를 찾는 것도 장성우 이사장의 몫이었다. 고려인동포 스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주 성건동에서 영천고려인통합지원센터(가칭) 후보지로 생각하는 영천시 호국로 79번지까지 40km 승용차로 41분 거리. 장성우 이사장은 영천 고려인공동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영천을 오가면서 돕기로 했다.
그런데 심각한 어려움이 생겼다. 방문동거(F-1) 비자 타민족 배우자들이 생존을 위한 ‘저임금노동’이었지만, 불법으로 일한 탓에 영천으로 이주·등록하려면 감당할 수 없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수년 동안 고려인의 삶을 보듬어왔던 장성우 이사장의 의견이다. 고려인동포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서 벌금 대신에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든지 아니면 벌금 액수를 크게 감면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실 경주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고려인마을, 또 수도권의 중국동포의 경우에도 한족 배우자들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 역시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과 관련, 수도권과 지역 거점도시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 가족의 인구감소지역 이주·정착을 권고하는 차원에서 방문동거 배우자들의 벌금 문제를 법무부가 최대한 해결해주자는 것이다. 단, 앞으로 한국의 실정법을 잘 지킨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경상북도의 외국인 고등학생 유치 계획과 고려인동포
지난 3월 6일 청주 충북도에서 열린 충청북도 외국인정책 자문회의에서 필자는 경북연구원 류형철 박사를 만났다. 그날 류형철 박사는 경북도가 추진하는 ‘광역비자’ 정책을 포함한 외국인정책, 특히 도내 55개 직업계고에 동남아·CIS지역 고등학생을 입학시킨다는 계획을 듣고 매우 놀랐다.
부모까지 초청해 일하게 하면서 아예 경북사람을 만들겠다는 생각인데, 다른 지역도 시행할 만한 좋은 정책으로 보였다. 물론, 2016년부터 전남교육청은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학생 20명을 선발해 벌교상고와 순천공고에 입학시켜 3년간 한국 학생들과 똑같은 첨단기술교육 등 3개년의 교육과정을 이수, 졸업장을 주는 사업을 시행했다. (<전남교육신문> 2016-4-7 「할아버지 나라에서 고등학교 졸업장 받아요」) 2017년과 2018년에도 전남의 특성화고등학교(벌교상고, 순천공고에 이어 전남미용고, 여수정보과학고로 확대)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고려인 학생의 초청사업이 이어졌다.
다시 필자는 경북도가 당장 유형2 동포가족, 특히 중도입국 고려인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역민을 만들 수 있는 ‘대안학교와 기술교육’을 시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고려인 중고등학생은 초등학교는 그나마 가능하지만, 한국학교에 적응하기 어렵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경기도 안성의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사례를 소개한다.
고려인 학생들은 경기도 후원으로 오전에는 등급에 따른 한국어를 집중하여 공부하고, 오후에는 직업교육 및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경기도 교육청이 로뎀나무학교에서 6개월 공부한 학생에게 ‘학적(學籍)’을 부여하기로 해서 한국 고등학교 편입학도 가능해졌다.
경북도는 4천 명 이상의 고려인동포가 사는 경주시의 경주공업고등학교 또는 인구감소지역인 영천시의 경북식품과학마이스터고등학교 등에서 특별학급을 운영해 고려인 학생을 경북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다만, 최소한 6개월 예비과정으로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해야 중도탈락하지 않을 수 있다. 필자가 지속해서 살피고 있는 전북과 충북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정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