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고려인마을②] 전북도와 김제시의 의지만 있으면…
중국과 구소련 동포의 ‘귀환’과 동포마을
한국 법무부는 2014년 4월부터 재외동포(F-4) 비자, 2015년 4월부터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에게 가족동반을 허용했다. 이산가족으로 사는 동포들의 처지를 헤아린 것이다. 최장 4년 10개월 체류하면서 3D업종에 종사할 수 있게 한 2007년의 방문취업(H-2) 비자 정책이 합법적인 체류를 이끌었다면, 2014/15년의 가족동반 허용 비자 정책은 동포사회의 한국 정착을 이끈 계기가 되었다.
중도입국 동포 자녀가 들어오면서 구로구 가리봉동 영일초등학교와 영등포구 대림동 대동초등학교 등에서 중국어로 가르칠 수 있는 이중언어 강사가 급히 채용되었다. 학생 수가 줄어 폐교하기로 했던 안산시 선일초등학교는 2014년 여름에 갑자기 고려인 학생이 대거 들어오면서 학교가 살아났다. 바로 이 무렵부터 한국사회는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를 ‘귀환’ 동포로 맞이해야 했다.
대부분 함경도 출신이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동포는 대한민국에 연고가 거의 없다. 중국으로 이주한 동포도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이 많으나, 1932년 만주국의 성립 이후에는 한반도의 남쪽 지방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제가 만주개발을 위해 만주로 집단 이주시켰는데,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安圖)현의 전북촌, 정읍촌, 무주촌은 1930년대 후반 강제로 이주당했던 전라북도 사람이 거주했던 곳이다. ‘연변의 전북인 연구’는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김주용 교수가 최고 전문가다.
현재 한국에 정착해 새 삶터를 이루고 있는 중국동포는 이미 80만이 넘었다. 고려인동포도 10만에 이르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피난 동포도 벌써 1,400여 명이 들어왔다. ‘외국인’ 신분인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는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면서 정착하고 있다. 수도권 중국동포타운마다 지역경제의 중심을 이루는 중국동포상가가 형성되었고 각종 전문직 단체를 통한 자조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아직도 법적 지위가 불안하거나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동반가족(F-1) 비자 상태인 가족도 상당수다. 그런데도 중국동포사회는 지방 이주에 소극적이다.
결국, 유형2(동포가족) 사업의 실질적인 해당자는 지방 도시에서 고려인마을을 이루어 사는 고려인동포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022년 10월 국회에서 가진 ‘고려인 콜호즈’ 토론회 이후, 많은 고려인동포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알게 되었다. 경주 고려인마을에서는 40여 고려인가족이 인구감소지역 사업 지자체인 이웃 영천시로 이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전북 김제에서도 고려인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한국내 고려인마을 구글문화지도를 펼쳤다.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과 경기도와 연결되는 충청 북부(당진, 아산, 천안, 청주, 진천)를 제외하면, 영남 지방 5곳과 호남 1곳이다. 왜, 호남 지방에는 광주 월곡동에만 고려인마을이 형성되었을까? 과연, 인구감소지역이라는 이점(利點)을 잘 살릴 경우, 전북 김제에도 고려인마을이 조성될 수 있을까?
김제 동포(고려인)마을도 가능하다
김제와 전북의 고려인동포 현황이 궁금했다. 국내 체류 고려인연구와 보고서가 적지 않게 나왔지만, 가장 최근인 2022년 12월에 나온 <경상북도 고려인 실태조사 및 지원정책 연구>(경북행복재단 간행) 정책연구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경북행복재단 손능수 선임연구원, 이민정책연구원 박민정 부연구위원, 영남이공대학 안지민 교수 연구팀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내부자료를 분석한 내용 중에 2021년 시도별 고려인 현황을 추려보았다. 전체 고려인 78,325명 중에 경기(30,402), 충남(11,982), 인천(8,430), 충북(6,000), 경남(5,323), 경북(4,843), 광주(4,053), 서울(2,571), 대구(1,405), 부산(1,371), 강원(398), 전남(366), 전북(353), 울산(334), 세종(207), 대전(126), 제주(88) 순이었다.
전북은 353명의 고려인동포가 사는데,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문동거(F-1) 비자가 11명, 방문취업(H-2) 비자 소지자가 114명이다. 그 외 재외동포(F-4) 비자 222명, 영주(F-5) 비자 소지자가 5명이다. 이론상으로 전북 거주 고려인동포가 김제에 모여 살면 고려인마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전북이주민통합센터 김지영 대표는 임실에 사는 고려인 여성을 만나본다고 했다.
지난해 국회 토론회 이후, 경주 고려인마을의 장성우 지도자는 방문동거(F-1)와 방문취업(H-2) 비자 고려인동포 40여 가정이 비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영천시로 이주하는 것을 돕고 있다. 그래서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도 설립했다. 그래서 필자는 전주 출신으로 원광대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광주 고려인마을 지도자인 이천영 목사에게 물었다. 경주 고려인마을 고려인이 비자 혜택을 고려해 인구감소지역 영천으로 이주하려 하듯이, 광주 고려인마을에서도 가능할 것인지. 이천영 목사는 쉽지 않다고 했다.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광주를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결론은 김제 고려인마을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김제가 주는 매력과 이점, 여기에 고려인공동체를 이끄는 유능한 고려인 지도자를 초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수도권인 경기도 안성 거주 고려인동포 가족 7명이 1차로 영천으로 최근 이주했다. 인구감소지역 영천으로 가면, 한국 정착이 가능한 비자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정보를 확인하고 왔다는 것이다. 김제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다.
또한, 한국전쟁 시기 황해도 피난민들이 김제시 용지면에서 황해도마을을 이루어 살아왔듯이, 우크라이나 피난 고려인동포가 김제에 새 삶터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타민족과 결혼이 많은 우크라이나 고려인동포의 사정을 고려했을 때, 방문동거(F-1) 비자인 배우자도 김제 지평선산업단지 등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여건이 가능하면 드넓은 김제 호남평야에서 농사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피난 동포 가운데 남부 우크라이나 흑토지대(유럽의 빵공장)에서 농사를 짓다가 온 분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엔> 2022-11-3 「전북 김제시에 ‘우크라이나 피난 고려인동포마을’이 조성된다면」)
김제 동포(고려인)마을, 시작할 때이다
고려인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부가 모두 일해야 하고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자리 등의 여건을 살피기 위해 1월 27일과 3월 1일 두 차례 김제를 방문했다. 인구감소지역인 김제시는 전북의 도청이자 한류문화관광 1번지인 전주,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익산, 중국·동남아로 나가는 관문도시인 군산 등 전북의 핵심거점도시들이 지척이다. KTX/SRT 익산역에서 김제의 산업단지가 있는 백산면까지는 승용차로 15분 이내다.
백산면행정사무소와 백산농협, 100년 역사인 백산초등학교와 백산문화회관이 있는 백산면의 중심에서 지평산산업단지까지 승용차로 5분이고, 김제 시내까지는 8분이다. 고려인동포 등 이주민을 위한 주말 한국어교실 운영이 가능한 백산농협과 백산문화회관도 있는 백산면에 장차 김제동포마을이 들어서면 좋을 것으로 보였다.
사실 전북은 이미 2년 전인 2021년 4월에 <전라북도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까지 제정했다. 전북도와 김제시의 의지만 있으면, 김제동포마을을 조성할 수 있다. 고려인마을보다는 동포마을이 좋을 수도 있다. 중국동포도 김제 백산면으로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중국동포협회 노순자 회장과 대화했다. 수원지역 중국동포 중에 방문취업(H-2) 비자로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가운데는 중국인(한족) 부인과 2-3명의 다자녀를 둔 사람들이 다수이다. 방문동거(F-1) 비자라 일을 할 수 없는데, 안정적인 한국 정착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현웅 전라북도경제통상진흥원 원장이 언급한, 유형1 외국인에 대한 지원정책(안정적인 청년정착을 위한 결혼부터 출산·양육·교육지원,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이 유형2 동포가족에게도 적용된다면 김제에 동포마을이 조성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민일보> 2023-1-24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의 정착을 바라며」) 재외동포청은 ‘재외동포’ 위주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이민청도 서둘러 설립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주민이 각종 처우 등을 고려해 이민지역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시작되면서 지방마다 외국인 유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한국내 고려인마을 구글문화지도’에 전북 김제가 표시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