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김제 고려인마을⑤] 무국적 우크라이나 전쟁피해 고려인에 깊은 관심을
“무국적 우크라이나 고려인 전재 동포 처리 국제사회가 주목할 것”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지난주 금요일(1.27) 오후 2시 전남대학교 공익인권법센터·재외한인학회가 공동주최한 <국내 거주 글로벌 재외동포와 인권> 학술회에 참석하기 전에 월곡동 광주고려인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날 아침 [고려방송]이 보도한 “광주정착 우크라이나 출신 무국적 고려인동포 체류비자로 벼랑 끝 몰려”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10.27일 남도일보와 광주광역시의회가 주최하고 전남대학교 광주국제개발협력센터가 주관한 ‘고려인동포 광주정착을 위한 지역사회 역할과 과제 토론회’까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동포가 한국사회에 알려진 것은 2001년 이후이다. 2001년 여름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임영상·방일권)가 재외동포재단의 연구과제, ‘독립국가연합 지역의 신흥 고려인사회 네트워크’ 중의 하나로 ‘남부 우크라이나 고려인사회의 네트워크 형성 방안’을 연구한 결과였다. 연구팀은 고려인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크림반도(장코이)와 헤르손, 미콜라이우(러시아 명칭 니콜라예프) 농촌 지역을 직접 찾아 계절농사(고본질)로 우크라이나에 왔다가 무국적 상태가 된 고려인동포와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무국적 상태에 처한 우크라이나 고려인동포가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2006년 1월 4일 KBS 2TV <추적 60분>(‘우크라이나 실태보고-국적 없는 고려인들’) 프로그램을 만든 박성중 PD가 2005년 12월 중순부터 열흘 동안 남부 우크라이나 실정을 심층 취재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약 2만명의 고려인 중에 3,000~4,000명 가량이 무국적자로 추정되었다.
국적을 잃게 된 것은 옛 소련연방 붕괴 이후 ‘기회의 땅’으로 불린 우크라이나 남부 흑토지대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여권을 잃어버렸거나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빠 신생국가인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재신청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사회의 온정이 답지했고 마침내 한국정부(외교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의해 우크라이나 여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국적 상태로 들어온 고려인동포는 당시에 국적 취득 기회를 놓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후, 육로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폴란드, 루마니아, 몰도바로 탈출한 고려인동포가 대략 3,000명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 1,300여 명이 한국에 들어와 광주를 비롯해 안산, 인천, 천안, 안성, 청주, 김해, 경주 등 전국의 고려인마을로 흩어져 ‘한국살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일가친척을 찾아 이동했다.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해 지금까지 875명의 항공권을 보낸 광주고려인마을에는 700여명이 정착하고 있다. 그런데 10여명이 무국적자로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 보도된, 아들 문마르크(3세)와 함께 광주에 정착한 문안젤리카(30세)는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제시해 간신히 ‘한국으로만 갈 수 있는 여행증명서’와 ‘90일 단기비자’를 발급받았다. 이후 장기체류를 위해 광주출입국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으나 여권이 아닌 여행증명서로는 동포 비자 발급이 불가능하다며 난민 비자(G-1)를 받았다. 난민 비자 체류 기간은 최대 6개월이다.
지난달 비자 연장을 신청했지만, 여권이 아닌 여행증명서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는 이유로 오는 4월로 만료되는 체류비자를 받은 것이다. 4월 말이면 떠나야 하는 문안젤리카는 무국적자라서 우크라이나 정부도 여권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도대체 ‘동포’로 판단되어 여행증명서를 받은 무국적 우크라이나 전재(戰災) 고려인은 ‘동포’가 아닌가? ‘난민’이라면 ‘난민’ 대우를 받았는가?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고려인동포는 스탈린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해 생존을 위한 고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고려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반도의 남쪽에도 조상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인동포는 같은 사회주의권에 살았던 중국동포와 함께 ‘코리안드림’을 기대하며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신분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필자는 2011년부터 가리봉동과 대림동, 안산과 광주의 중국동포타운과 고려인마을을 찾으면서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는 이미 한국 정착을 희망하고 있어 ‘귀환’ 동포라고 생각했다. 1945년 해방 직후 귀환한 동포들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1860년대 이후 1945년 8월 해방 전까지 한반도를 떠난 500만 한인 중에 200만명 이상이 인천과 부산 등을 통해 귀환했다. 만주·일본·중국 등지에서 돌아오는 해외 귀환 동포의 식량, 주택 등 기본적인 의식주 외 보건위생, 실업, 교육문제 등 구호사업이 당시 한국사회의 현안이었음을 선행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해방 후 원불교의 전재동포원호회와 박청수 교무의 고려인 사랑
1945년 8월 31일 조선재외전재(戰災)동포구제회(위원장 유억겸)를 시작으로 많은 구호단체가 결성되었다. 전재동포원호회를 설립한 원불교는 그해 9월 4일 이리후생원(이리역전), 9월 10일 서울보호소(서울역전) 등 전재동포구호소를 설치했다. 전주후생부와 부산후생원으로 확대한 원블교는 이리(현 익산)에서는 13개월 반, 서울에서는 6개월 반 동안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방황하는 귀환 동포들에게 식사·의복의 공급, 숙소 안내, 무임승차권 제공, 응급 치료와 분만 보조, 그리고 사망자에 대한 치상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전재동포구호사업, <원불교대사전>)
역사는 반복되는가? 2022년~2023년 전재(戰災) 동포가 다시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1945년에 합류하지 못했던 고려인동포다. 1945년 해방 후에 갑자기 남한 인구의 10% 이상이 만주와 일본, 중국에서 들어온 200만 동포를 구호하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면, 2022~2023년의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인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나 저출산·고령화 인구절벽시대로 전국의 228개 시군구 중에 89개가 ‘인구감소지역’이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려인동포도 전재(戰災) 동포와 다름없다. 모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흩어진 일가친지이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후 전재동포구호소를 차린 원불교의 역사를 확인하면서, 2001년 8월 15일 제1회 러시아 볼고그라드 한민족축제에서 고려인동포와 어울려 춤을 추던 원불교 박청수 교무가 생각났다.
2001년 박청수 교무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공동대표로 ‘8.15기념 제1회 볼고그라드 한인축제’에 참석했다가 우즈베키스탄 누크스 지역 고려인 대표로 온, 1937년 강제이주 열차 안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정조야와 같은 숙소에 묶었다. 박청수 교무는 정조야가 사는 누크스 지역의 고려인이 환경재앙으로 아랄해 물이 말라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참상을 들었다. 서울에 돌아와 40여일간의 모금 끝에 70가정 500여명을 긴급 구조할 수 있는 1억 5백만원을 마련한 박청수 교무는, 이인호 주러시아 한국대사의 소개로 알게 된, 볼고그라드에서 고려인을 돕고 있는 모스크바 삼일문화원 이형근 목사가 서울에 왔을 때 직접 성금을 전달했다.
귀환 고려인동포의 한국 정착과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조상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귀환하는 고려인동포, 특히 전쟁 이재민으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무국적 전재(戰災) 동포의 한국 정착,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법무부가 ‘역사적인 이유’로 여전히 무국적자인 고려인에게 ‘동포’ 비자 ‘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법무부가 시범사업으로 시행 중인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2(동포가족) 사업으로 처리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광주광역시가 아니라 가까운 인구감소지역에 정착해야 한다. 전북 김제도 후보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제의 전북이주민통합센터가 ‘김제동포마을’(가칭)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2(동포가족) 안내에 따르면, 해외 전입자는 ‘2인 이상 가족(본인, 배우자, 자녀) 단위로 신규 입국하여 시범지역에 거주하려는 60세 미만 동포’라고 되어 있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F-4) 비자 특혜를 받는 동포는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새만금의 배후도시 김제에는 지평선산업단지, 대동농공단지, 서흥농공단지 등 일자리가 풍부하다. 광주고려인마을이 너무 좋으나, 비자 혜택으로 어쩔 수 없이 김제로 이주하는 동포들도 가까운 광주고려인마을의 도움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45년 해방 후 원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전북(김제)의 지역사회가 우크라이나 무국적 동포를 포함한 고려인동포를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