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 100주년 기획전의 특별한 ‘감회’와 광주 고려인마을의 새로운 ‘시도’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3년 3월 1일은 한글신문 <선봉>이 <레닌기치>를 거쳐 <고려일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창간 10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날이다. <고려일보>의 가치에 공감해왔기에 창간 100주년 기획전이 열리는 광주고려인마을(월곡고려인문화관)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 내용을 빨리 보고 싶었다.
한국외대 재직 시절인 2015~16년 필자는 대학원 수업에 고려인 연구자인 배은경 교수를 초청해 1920~30년대 연해주 고려인사회 연구의 보고인 <선봉>을 함께 읽었다. 그 성과로 교수/학생의 글을 묶어 두 권의 책이 나왔다. 2017년 나온 배은경·정막래·임영상 편 <한글신문 선봉을 통해 본 연해주 고려인사회의 교육과 생활문화>와 역시 같은 해 나온 정막래·배은경·임영상 편 <한글신문 선봉을 통해 본 연해주 고려인사회의 문학과 문화예술>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0년대 전반에 시작되었으나, 1923년 극동지방에 소련체제가 확립되면서 고려인사회는 ‘소비에트 고려인’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생 소련의 소수민족 토착화 정책에 따른 민족적 정서와 특성이 보전, 발전될 수 있었던 ‘1920~30년대 역사의 선물’이었다.
고려인들은 스스로 ‘고려어’, 또는 ‘고려말’이라 불렀던 민족어를 공식 사용할 수 있었고, 예술과 문학 등 문화생활 전반을 민족어로 누릴 수 있었다. 교육도 민족어로 진행되었고, 신문과 교과서 등 문자 매체들도 고려어를 사용했다. 고려인학교 교사양성을 위한 극동고려사범대학(1931)이 설립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러시아 연해주는 의병의 중심지로, 또 1919년 3.1운동의 확산인 중국 용정(3.13)과 러시아 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토크(3.17) 반일시위 직후 고조된 반일 무장투쟁의 중심지 상태였다. 여기에 1921년~1922년 3차례에 걸친 연해주의 러시아한인예술단(해삼위 조선학생음악단, 천도교청년회연예단, 기독교학생음악단)의 내한 공연으로 러시아가 수준 높은 예술의 나라라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러시아 민속 코팍춤을 추는 러시아 한인 청소년은 조선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경성에서 공연한 고려인 청년 박시몬에게 고팍춤을 배운 조택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 무용가가 되기도 했다.
1919년 3월 17일 반일시위를 전개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에서는 1920년부터 매년 3월 1일에 삼일절 기념 집회가 열렸다. 1923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선봉>의 제호가 처음에 <三月一日>인 것도 삼일절을 기리기 위해서였는데, 제4호부터는 러시아어로 ‘아방가르드(Авангард)’라는 혁명적 투쟁 의지가 강조된 <선봉>으로 바뀌었다.
고려일보 100주년 기획전시와 삼일절 104주년 행사
<고려일보> 100주년 기획전시(2023.3.1.~2024.2.28.)는 <고려일보>의 생생한 역사를 실증자료로 확인해주고 있다. 전시자료가 한글과 러시아어로 병기되어 있다. 안산과 인천, 김해와 경주, 청주와 아산 등 다른 지역의 고려인도 찾았으면 좋은 전시회다. 마침 <고려일보> 한국 특파원인 미디어사람 협동조합 채예진 이사장이 러시아어로 전시회 소식을 유튜브에 올렸다.
3월 1일 오후 2시 월곡고려인문화관 앞 광장에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사회단체, 고려인마을 주민과 어린이합창단, 월곡동 주민들과 방문자들이 모여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후 참석자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홍범도공원에 도착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지역 인사들이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서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와 태권도경호학과 학생들이 준비한 ‘그날, 우리는’ 음악극 공연도 선보였다.
거리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려인이었는데, 고된 ‘한국살이’에 지친 고려인동포에게 특별한 삼일절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주고려인마을을 찾았다. 과거에는 학생들과, 근래에는 칠순이 넘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 매번 느끼지만, 광주고려인마을은 한국사회가 ‘귀환’ 고려인동포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선도적으로 보여주어 왔다. 이번에는 요양원과 협동농장 운영이다.
‘귀환’ 동포지만, 고려인은 여전히 한국에서 외국인이다.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또 3세대가 사는 고려인가정마다 노년층이 늘어나는데 한국어 소통도 문제지만, 외국인이라 경로당도 이용할 수 없다. 2022년 11월 광주고려인마을이 농촌지역의 고려인쉼터를 고려인 노인을 위한 요양원으로 개소한 이유다. 운영비는 자체 노력으로 충당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광주고려인마을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피난 동포에게 주거와 일자리 알선 등을 도왔다. 그런데 노동력이 없고 질병이 있는 동포들이 걱정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농사를 짓던 분들이 많아 월곡동 고려인마을 상가가 주문하는 계약재배 협동농장을 해보자고 했다. 고맙게도 광산구새마을협동조합(조합장 김준행)이 농지를 무상 대여해주었다. 지난 2월 9일 출범식을 가진 협동농장(광산구 삼도동) 현장을 가보고 싶었다.
3월 1일 광주고려인마을 행사(오후 2시)에 앞서 고려인 협동농장을 찾았다. 마침 자신의 땅을 무상으로 대여해준 김준행 조합장이 우크라이나 피난 동포 김레브씨와 함께 비닐하우스 설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준행 조합장의 안내로 농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한국살이에 고달픈 고려인동포들에게 쉼의 공간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아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는 관광농원 비전도 제시했다. 이제 광주고려인마을을 찾는 방문객은 고려인 협동농장뿐만 아니라 바로 이웃에 있는 고려인마을 청소년들이 다니는 다문화대안학교 새날학교도 함께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인구절벽시대에 한국 법무부는 행정안전부와 협력해 전국의 89개 인구감소지역에 정착하려는 동포가족에게 비자 특례를 주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2022.10~2023.10)을 시행 중이다. 광산구는 인구감소지역이 아니나 광주고려인마을의 새로운 노력이 새롭게 고려인마을을 조성하려는 인구감소지역 지자체에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