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고려인마을②] 러시아어 현수막·간판 내건 거리···”이젠 홍보도 신경써야”
충북의 다문화가정 학생 1위 청주 봉명초등학교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1986년 3월 개교한 청주 봉명초등학교(교장 손희순)는 2017년부터 ‘외국인 가정의 학생들이 편입학’(중도입국)하면서 현재 전체 452명 중에서 40%가 넘는 194명이 다문화 가정 학생이다. 194명 중에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 학생이 120명이다. 그래서 학교 공사를 알리는 한국어와 러시아어 현수막을 함께 걸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학교소개에 러시아어 안내도 들어 있다.
“Здравствуйте, дорогие ученики и родители! [중략] В нашей школе больше всего ученики из многокультурных семей в Чунгбуке. Следовательно, необходимо построить нашy школy, где многонациональные студенты и корейские студенты, многонациональные родители и корейские родители могли бы сблизиться.”[하략] (봉명초 학생,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중략] 우리 학교는 충북에서 다문화가정 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다문화가정 학생과 한국학생, 다문화가정 학부모와 한국 학부모가 함께 친해지는 봉명초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략]
봉명초등학교는 선주민 학생들과 이주민 학생들이 언어적 제약을 넘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다양한 놀이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와 연계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아동센터 3곳과 연계해 다문화 학생들의 ‘학교 밖 돌봄’을 추진하기 위해 충북대 러시아언어문화학과, 청주교대 다문화지원센터, 서원대 유아교육과와 MOU를 체결해 이주배경 학생들의 수업 협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고려인 아동의 방과 후 돌봄교실에 지원하는 아동은 많은 데 조건이 까다롭다. 따라서 바람직한 방향은 인천 선학중학교 교정에 설립된 주민/학생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교육문화공간 마을엔’처럼 봉명초등학교 교정에 마을교육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장기적인 과제이다.
우선은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내리 고려인마을에서 경로당 2층을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으로 만들어 큰 효과를 올리는 것처럼, 봉명동 고려인마을에 적절한 공간을 확보해 지역아동센터(돌봄센터)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인천과 안성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봉명초등학교는 외국인(다문화) 학부모를 위한 교육 노력으로 청주시평생학습관과 연계해 외국인 주민과의 동행 프로그램인 ‘이국동성'(異國同成 : [異]다름을 이해하고 [國]다양한 국가의 주민이 [同]함께 성장하는 지역사회를 [成]이루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외국인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요리교실’을 시작으로 평생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봉명동·사창동 고려인마을, 직접 체험과 탐방 절실
2022년 9월 15일 오후 6시 봉명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장안리 교수와 대학원 학생들이 합류했다. ‘재외동포 이해교육’으로 청주 고려인마을 현장탐방·수업을 시작해 장 류보위 대한고려인협회 청주지부장과 청주대 교양학부 이영범 교수가 봉명동 고려인마을을 탐방하고 율량동 이주민노동인권센터로 이동해 밤 9시까지 수업과 대화시간을 가졌다.
다문화의 현장인 고려인마을 탐방수업은 언어 경관(linguistic landscape)에 주목했다. 먼저, 다문화 학생이 40%가 넘는 봉명초등학교에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걸려 있는 현수막을 가리켰다. 이어서 길가의 고려인 식당에 러시아어로 적은 음식 메뉴를 살펴보면서 구글지도에도 나오는 먀쓰노이 정육점에 이르렀다.
고기의 러시아어 먀쏘(мясо)의 형용사 형태를 그대로 정육점의 상호로 쓰고 있다. 인천, 안산, 광주에서 레표시카(лепёшка)를 빵집 간판으로 쓰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만큼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우리 동네’ 의식을 줄 수가 있다. ‘비조브이 첸트르'(비자 센터) 간판도 마찬가지다. 이들 간판의 뜻(언어 경관)을 알아야 우리와 색다른 고려인마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이주민집거지를 탐방하면, 색다른 모습(간판)을 보고, 우리와 다른 음식을 먹고, 또 이주민 및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먹고 듣고’의 세 가지 이점을 누릴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날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대학원생들은 고려인마을 탐방을 마치고 고려인이 운영하는 ABC STORES 상점에서 고려인이 애용하는 레표시카(빵)와 베고자(큰만두), 마르코피(당근김치),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청량음료인 크바스 등을 구매했다.
봉명동 거리 탐방을 마치고 장 류보위 지부장이 일하는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 도착했다. 우리는 비대면만 가능한 학생들을 고려해 이주민노동인권센터 강의실에서 대면 및 비대면 수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먼저 장안리 교수가 사전에 학생들과 함께 읽은 공공PR의 관점에서 이주민과 동포들을 바라보는 논문을 소개한 후, 필자가 사전에 보낸 ‘고려인동포의 귀환과 경기남부, 충청북부 고려인마을’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어서 고려인 상점에서 구입한 고려인의 일상음식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봉명동 고려인마을 탐방과 관련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청주 거주 이영범 교수도 봉명동 고려인마을 탐방이 처음이라고 했다. 홍익대 대학원생들은 한국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과 재외동포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나누면서 직접 체험(탐방)이 이주민과 고려인동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다시 기회가 닿으면 보다 여유를 갖고 고려인마을을 걷고 싶다는 이야기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