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고려인마을①] 충청북도도 ‘고려인주민지원조례’ 제정 서둘길
귀환 고려인동포와 지자체의 지원조례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1860년대 중반부터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가 1920~30년대 한반도보다 높은 교육과 문화예술을 누린 고려인사회.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또 1953년 스탈린 사후 구소련 전역으로 흩어져 소비에트 고려인으로 살던 고려인동포가 각각 러시아 고려인,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카자흐스탄 고려인, 우크라이나 고려인 등으로 조상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2004년 재외동포법(1999년 제정) 시행령 개정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한반도를 떠난, 중국 조선족과 구소련 고려인도 법적으로 ‘재외동포’가 되었고, 2007년 방문취업비자(H2) 시행으로 ‘불법체류’ 상태를 벗어나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중국동포사회는 다양한 자조(自助) 단체를 만들었으나,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은 ‘코리안’이지만 ‘코리아’에서 ‘외국인/이방인’일 뿐이었다. 따라서 고려인동포는 한국인 NGO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2013년 10월 1일 광주광역시가 ‘광주광역시 고려인주민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계기로 광주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매년 10월 3째주 일요일을 ‘고려인의 날’로 함께 축하하고 있다. 2016년 2월 24일 경기도, 2018년 11월 5일 인천광역시, 2019년 4월 15일 경상북도, 2020년 5월 14일 경상남도, 2021년 4월 9일 전라북도, 2021년 8월 17일 충청남도까지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사실 전라북도에는 고려인동포 집거지가 형성되지 않았는데도 지원 조례가 제정되었다. 반면에, 충청북도에는 청주시 봉명동/사창동 일대에 2천여 명, 진천군에 1천여 명, 음성군에도 상당수의 고려인 주민이 있음에도 아직 고려인 주민지원조례가 없다. 2022년 6월 30일 현재 청주시 인구는 등록외국인 1만2474명을 포함해 86만1477명이다. 외국인 주민 비율이 1.4%이다.
산업단지와 기업체가 많아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청원구 오창읍(1455명/내국인 6만9855명) 다음으로, 흥덕구 복대2동(1143명/내국인 1만5966명)과 봉명1동(856명/내국인 9592명), 서원구 사창동(865명/내국인 1만4694명) 순이다. 외국인 주민의 비율은 봉명1동(8.9%), 복대2동(7.1%), 사창동(5.8%) 모두 다문화사회 기준인 5%가 넘는다. 특히, 봉명1동과 사창동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동포와 구소련 출신 외국인이 모여 사는 고려인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고려인이 모이게 된 것도 전국의 여타 고려인마을과 유사하게 인근에 단순노동 일자리가 많은 공단과 가깝고 학생들이 살던 주거비가 싼 지역(보증금 15만원에 월 10만원)이기 때문이다. 충북대가 기숙사 시설을 확충하면서 학생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고려인동포가 들어왔다. 그런데 초기 청주 고려인마을의 형성 배경에는 청주상당교회의 역할이 컸다. 일자리를 찾아 청주로 들어오는 고려인동포에게 쉼터(임시숙소)를 제공하고 공장에도 걸어갈 수 있는 저렴한 봉명동에 주거를 알선해 주었다. 고려인동포들이 일요일에 상당교회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면서 한국정착에 도움을 받은 것이다.
청주 고려인마을에도 고려인 주민지원센터 필요
봉명동 일대에는 고려인 목회자가 러시아어로 예배를 인도하는 고려인교회가 여러 곳이다. 지난 9월 15일 재외동포재단이 지원하는 재외동포 이해교육으로 청주대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후에,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학 출신인 청주대 교양학부 이영범 교수와 함께 봉명동을 찾았다. 2019년 10월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대한고려인협회 장 류보위 청주지부장의 안내를 받았다.
Kim’s Russian Food(Lee Cafe에서 바뀐) 식당 바로 옆 봉명초등학교 교문과 대각선 건물(한국학원 자리) 2층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New Zabet 교회를 방문했다. 6년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에 온 고려인 박 알렉산드르 목사(우크라이나에서 신학 공부)가 최근 세운 교회다. 박 알렉산드르 목사 내외와 큰아들 모두 평일은 일하고 주일에 고려인 교우들을 위해 러시아어로 예배를 드린다. 예배 후 점심 식사도 고려인들과 함께 먹는데, 지난 5월 1일부터 오후 3~5시 교회에서 청주시평생학습관이 주관하는 ‘이국동성(異國同成)’ 한국어교실을 열고 있었다.
마침 지난 5월 말에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니콜라예프)에서 온 딸 알리나(19세)가 문을 열어주었는데, 이번에 알리나는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우크라이나 피난 동포’로 한국에 들어왔다. 방문취업비자(H2)를 받은 알리나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전쟁 덕분에 우크라이나 알리나 가족의 한국 ‘귀환’이 앞당겨진 셈이다.
장 류보위 대한고려인협회 청주지부장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동포 40여 가정이 전쟁 난민으로 폴란드, 루마니아 등지로 피난한 상태인 가족의 한국 입국을 도와달라고 신청한 상태다. 그는 “실제로 이보다 더 많이 있다”고 했다.
마침 9월 16일 충남 아산시 선문대학교에서 ‘우크라이나 피난 동포 지원 지역 연대 전국연대회의’가 열렸다. 장 류보위 지부장도 청주 지역 고려인동포를 대표해서 참여했다.
2019년에도 그리고 2022년에도 청주에는 고려인동포 지원단체가 보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 청주에 사는 장 류보위는 2018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결성된 대한고려인협회의 청주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사창동 자택에서 고려인한국어교실과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 고려인 노인활동실도 열었으나 코로나로 한국어교실은 문을 닫은 상태다. 부모님도 러시아 연해주로 되들어갔다고 한다.
현재 장 류보위는 토요일 오후 1~3시, 3~5시 두 차례 청원구 율량동 이주민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리는 한국어교실 수업(통역)을 돕고 있고, 흥덕구 복대2동 청주 서부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외국인 대상 한글 교육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 외 청주 고려인 관련 자문과 통·번역, 안내 등을 맡고 있다.
한편 청주 이주민노동인권센터와 청주 서부종합사회복지관 등이 청주에 사는 외국인 주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봉명동/사창동에 사는 일부 고려인동포도 주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평일이든 주말이든 고려인동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도 하면서 고려인마을을 널리 알리고 한국사회와 연결할 수 있는 ‘고려인 주민 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인구소멸시대인 만큼, 충청북도(도지사 김영환)와 청주시(시장 이범석)도 ‘귀환’하는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한 준비로 장 류보위는 고려인동포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청주대 이영범 교수 등 한국인들의 지원 아래 곧 ‘고려인의꿈’ 단체를 등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