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동족대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고려인들

2022년 3월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주거지역 폭격으로 부상한 한 남성을 들것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했다. 많은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은 서로의 나라에 친척과 가족들이 살고 있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편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싸우고 있다.

구소련에 살고 있는 다른 민족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벨라루스 정부가 러시아군이 자국의 영토를 우회하여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공격하도록 용인한 반면, 일부 벨라루스인들은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해서 벨라루스의 권위주의 정부를 후원하는 러시아에게 저항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한테서 분리독립을 시도하다가 푸틴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실패한 체첸 민족 역시 분열되어서, 러시아군에 용병으로 지원한 친러 성향 체첸인들과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반러 성향 체첸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동족 상잔을 다시 겪고 있다.

한국의 동포인 고려인들도 전쟁이 강요하는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현재 러시아에는 대략 15만명, 우크라이나에는 약 2만~5만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전쟁 또는 ‘특수군사작전’에서 많은 고려인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전사한 사람들도 있고, 두 나라에서 영웅으로 홍보되는 사람들도 있다.

비탈리 김(Vitaly Kim)

비탈리 김은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주 주지사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처럼 SNS를 잘 활용하는 김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미콜라이우주를 5개월간 성공적으로 사수했다. 한국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던 김 주지사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한국의 지원을 호소하면서, 전쟁 이후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답변했다.

파샤 리(Pasha Lee)

파블로 파샤 리는 우크라이나 배우다. 영화 출연, 더빙 성우 등 방송활동을 많이 했고, 우크라이나 예능 프로그램 ‘Day at Home'(집에서의 하루) 진행자였다. 그의 고향은 2014년, 러시아가 병합했던 우크라이나의 영토 크림반도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파샤 리는 우크라이나 영토방위대에 입대하여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다가 3월 6일에 전사했다. 우크라이나 영화계와 기자협회는 그의 죽음을 추모했고, 그의 동료들과 팬들은 그의 영웅적인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타니슬라프 김(Stanislav Kim)

스타니슬라프 김은 러시아군 중위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의 역습으로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군 기갑중대를 김 중위가 기지를 발휘하여 구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서 전투에서 우크라이나인 포로를 여러 명 포획한 전공으로 러시아 국영방송 매체들은 그를 전쟁영웅으로 선전하고 있다. 친 북한 성향 고려인 단체 ‘로씨야고려인통일련합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조선의 소리> 역시 김 중위의 무용담을 선전했다. 인터뷰에서 그의 가족들은 스타니슬라프 김이 능력 있는 장교라고 자랑스러워 했고, 그의 영웅적인 개선을 기다린다고 답변했다.

드미트리 박(Demitry Park)

드미트리 박은 러시아군 대위이다.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소련 붕괴 이후 가족과 러시아로 이주해 노보시비르스크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임관 이후, 러시아군 해외파병에 참가해서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근무하고 표창을 받았다. 과거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병합에도 참전했던 박 대위는 올해도 특수군사작전에 참전했고, 3월 5일에 전사했다.

러시아 방송매체는 박 대위의 중조부는 러일전쟁, 조부는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부친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여 각각 표창을 받은 4대에 이은 군사가문이라고 홍보하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박 대위 누나는 “동생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자신도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고 애도하면서, “동생은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군인”이라고 추모했다.

크리스티나 김(Christina Kim)

크리스티나 김은 러시아군 공수부대 소속 간호병장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의무병으로 참전한 크리스티나 김이 부상을 입은 12명의 동료 공수대원들을 직접 전장에서 구조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방송매체들은 러시아가 ‘해방하려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치료하는 그녀를 ‘고려인 수호천사’, ‘대조국전쟁 당시 용맹한 소련 간호원들과 대등한 영웅’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러시아 방송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티나 김은 자신에 대한 찬사에 감사를 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국가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신과 전우들을 러시아 국민들이 변함없이 지원해주기를 당부했다.

크리스티나 김(Christina Kim)

필자는 미국 남북전쟁 영화를 시청한 적이 있다. 한 전투에서 북군 소속 아일랜드계 여단이 남군 소속 아일랜드계 연대와 교전을 벌이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피해서 미국으로 함께 이민 왔던 아일랜드 출신 군인들은, 신대륙에서 서로 교전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탄식했다. 그리고 그날 전투에서 많은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새 나라에서 동족에 의해 전사했다.

구한말 시기,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인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었고, 그 이후 소련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들의 후손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여러 나라에서 정치계, 영화계, 군대 등 다양한 방면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고려인들 역시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고려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러시아군 소속 고려인들 역시 조국의 명령에 복종하여 교전에 임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 뿐 아니라 양국에 사는 고려인들도 더 많은 청년이 참전하고 희생될 것이다.

고려인들과 동포인 남한과 북한은 지난 세기, 3년간의 동족상잔을 겪은 역사가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 휴전 69주년이 되는 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들 역시 3년 동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비극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한과 북한도 한국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비록 힘든 난제이지만, 오늘날의 휴전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로 변화하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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