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사태 중-러 각축과 19세기말 한반도 정세

연료 가격 폭등 등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난입한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시의 청사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아시아엔=이종은 아메리칸대 국제학부 강사, 북한계발연구소 연구위원] 연초,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에 카자흐스탄 정부 요청에 따라 구소련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인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탄, 타지키스탄 등에서 평화유지군 3000명을 파병했다.

대규모 시위는 초기에는 정부의 LPG 가격 인상 방침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30년 장기집권과 정치적 부패에 대한 사회적 반발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대통령 관저와 공공건물들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고, 정부군과 시위대 사이에서 무력충돌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변수들을 주목한다.

1. 집단안보조약 기구가 ‘집단안보 개념’을 확대하고 있다.

나토와 같은 다른 동맹기구들처럼, CSTO는 회원국들의 집단안보 보장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전통적으로 집단안보는 ‘외부적’ 안보위협, 가령 타국의 군사침범 때 적용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카자흐 정부의 ‘내부 안보위협’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집단안보가 실시되고 있다. 물론 CSTO도 이번 사태의 배후를 ISIS 같은 외부 테러집단 소행으로 규정하면서 파병을 정당화하고 있다.

유사하게 동학혁명 당시, 조선왕조가 ‘내부적 안보위협을’ 진압하기 위해서 청나라에게 파병을 요청한 사례가 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은 나자레브 대통령의 장기집권 하에 있다가, 2019년 나자레브가 지명한 토카예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도 나자레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으로서 실권을 유지하면서 신임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했다.

이번 사태에 대처하여, 토카예프는 나자레브와 전직 대통령의 핵심 축근들을 NSC에서 사임하게 하였고, 현재 사태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나자레브가 공개석상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일 토카에브가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을 국민적 분노의 희생양으로 지목하여 정계에서 축출하고, 국내사태를 봉합한다면, 자신의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기사회생 가능성도 있다.

비슷한 역사적 사례로, 대한민국 6공화국 초기, 노태우 대통령이 반정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시키면서 정계에서 배제한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3. 우크라이나와 미국이 이번 사태의 수혜국들이 될 수 있다.

최근까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접경지대에서 러시아 군사활동이 증대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구소련 지역 군사적 긴장의 주요 무대로 주목받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카자흐스탄 파병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압력을 완화하여, 우크라이나에게 일시적이나마 안보적 여유를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카자흐 사태에 직접 개입할 수단은 거의 없지만, 러시아의 군사적 시선이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변경된 것이 전략적으로 나쁜 결과는 아니다. 미국과 서구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에게는 만일 우크라이나 안보위기가 잠정적으로 소강상태가 되고,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중앙아시아 사태 악화가 억제되면, 두개의 외교적 과제들에 대한 정책적 부담을 경감케 하는 전략적 호재를 기대할 수 있다.

‘과화숙식(過火熟食)’이라는 사자성어를 미국과 우크라이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양국이 카자흐스탄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잠시 보류된 러시아와의 전략적 분쟁이 다시 재개될 우려도 있다.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6일(현지시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카자흐스탄의 한 공항에 도착한 군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4. 카자흐스탄 사태가 중국-러시아 관계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이 공식적으로는 CSTO 회원국으로서 러시아 동맹국이지만, 동시에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의 회원국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중요한 거점이다. 중국정부가 소수민족과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신장자치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국에게도 카자흐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인접국이다.

현재 중국은 카자흐 정부의 내부통제 방침들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만일 사태가 지속된다면, 중국도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설령, CSTO의 파병으로 사태가 안정된다 하더라도, 중국 입장에서는 그로 인한 러시아의 지역패권 확대를 반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카자흐스탄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한측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태에 개입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청일전쟁 풍자화. 제목은 ‘낚시놀이’. 프랑스의 조르주 비고가 1887년 2월 15일자 일본 잡지 <도바에>에 실은 삽화. 청일전쟁 발발 직전의 동아시아 정세를 그렸다.

동학혁명 당시, 일본은 조선의 청나라 파병요청에 대응하여 자국 군대를 파병하여 청나라 영향력을 견제했다. 그리고 얼마 후 조선에 주둔한 청군과 일본군이 교전을 하여 청일전쟁이 발생했다.

현 카자흐스탄의 사태가 중앙아시아에서 중러 공조의 무대가 될지, 아니면 냉전 이후 새로운 중러 분쟁의 원인이 될지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형주 통치권을 놓고 무너진 촉나라와 오나라의 공조가 위나라에게 어부지리의 호재가 되었다고 서술돼 있다.

현 국제정세에서 중러 공조를 우려하고 있는 미국측 입장으로선, 러시아와 중국이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 패권을 두고 갈등을 겪게 된다면, ‘맹귀부목(盲龜浮木)’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어려운 국제정세에서 우연히 얻게 된 전략적 호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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