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어느 모스크바 이발사 이야기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전해온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사자의 피해를 우려해 가명을 썼다. 이 글에서 ‘나’는 대사관 직원이다. <편집자>
이발소에서 내 머리를 열심히 깎던 이발사 아르춈이 말했다. “요즘 뉴스가 시끄럽지요? 한국 언론은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보도하는지 궁금하네요.”
나는 말이 화가 될까봐 잠자코 있었다. 눈치를 보던 아르춈이 입을 열었다.
“난 전쟁은 반대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우크라이나 출신이거든요. 대부분 내 주변 친구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형제국입니다. 같은 민족,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요. 그런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할 순 없어요.”
푸틴도 우크라이나는 같은 민족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피를 흘리게 했다. 아르춈이나 푸틴, 시작은 같은데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잠자코 있었다.
역사를 좋아한다는 아르춈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러시아인은 원래 호전적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랬지요. 전쟁을 하지 않고선 못 배기는 민족입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아프간, 체첸, 조지아, 돈바스, 시리아, 오늘 우크라이나까지. 하지만 나는 전쟁반대론자입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면서 각국의 특색이 있는 ‘햄버거’를 먹어보는 게 꿈이지요. 이젠 그러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일부러 러시아 정부 입장을 쓱 밀어봤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로 인한 지정학적 불균형과 극우정당이 우크라이나 주재 러시아 교민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푸틴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아르춈은 갑자기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거짓말입니다. 다 프로파간다지요. 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그런 말은 안 믿어요.”
아르춈은 네덜란드제 로이첼 왁스를 내 머리에 착착 발라주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로이첼 왁스통은 한가득이었는데, 벌써 절반 이상이 팔렸어요. 언제 다시 입고될지도 기약이 없어요. 왁스가 떨어지면 뭘로 손님 머리를 다듬어야 하지요? 석유로 해야하나요?”
나는 내심 아르춈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세계여행자로서, 아르춈의 세계 햄버거여행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속으로 빌었다.
한편, 푸틴이 공개석상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한다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뉴스에서 보았다.
“성경에도 나와있죠.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장13절)”
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는지라”(마태복음 26장52절)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사무엘상 17장4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