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트남전 경험이 푸틴의 러시아에 주는 교훈
1968년 1월 말, 미국 CBS 방송국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북베트남군이 구정 명절 축제기간을 이용하여 대규모 기습공세를 실행했다”는 속보를 접했을 때,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What the hell is going on?”(우리가 이기고 있는 전쟁 아니었나!”
한달 후, 베트남에서 현장취재를 하고 귀국한 그는 방송에서 “현 전시상황은 교착상태”라고 진단하면서, “미국이 철군할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인 방안은 평화협상 뿐”이라고 논평했다.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방송을 시청하고 나서, “크롱카이트가 반대로 돌아섰으니 이제 미국의 심장부가 전쟁을 반대할 것이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국내여론의 악화를 체감한 존슨 대통령은 1968년 3월 31일, 본인의 재선 불출마와 북베트남과의 평화협상 추진을 발표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존슨 행정부는 전쟁지지 여론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실시해 왔다. 이 홍보에 참여한 미국 정책가들은 “미군이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공산 게릴라들을 제압하고 있고, 미국시민들의 ‘정상적인, 풍요로운 삶’에 큰 부담 없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을 안심시켰다.
존슨 행정부는 전쟁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여론의 악화를 우려하여, 납세인상을 거부하며, 오히려 국내 사회복지 확대 정책을 병행해서 실시했다. 1967년 가을, 베트남 파병 총사령관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는 “미군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으며 터널 끝에 빛이 보이고 있다”고 미국인들을 안심시켰다.
북베트남의 구정 공세는 존슨 행정부의 이런 국내여론 전략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미국 시민들은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들이 공격받고, 수도 사이공에 위치한 미국대사관 관저 내부까지 공산군이 일시적으로 진입하는 장면들을 방송으로 시청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반격을 위해서 추가 20만명의 파병이 필요하다는 미군 장성들의 보고는 미국 시민들을 더욱 동요케 했고, 그동안 전쟁의 성과를 홍보한 존슨 행정부를 불신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병 징집 확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미국사회에서는 반전시위가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정치적 신용을 잃은 존슨 행정부는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
2022년 2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특수 군사작전’을 명령하면서, 베트남전 당시 존슨 행정부와 비슷한 약속을 러시아인들에게 보장했다. 첫째, 러시아군이 성공적으로 우크라이나 일대를 해방할 것이고, 둘째, 러시아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군사작전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었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모든 작전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국내언론에게 발표했다. 사상자수가 증가하고, 국제제재로 인한 경제 손실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전시동원령 소집을 거부했고, 국가경제를 전시태세로 전환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러시아 시민들, 특히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 시민들은 대체로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징집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심리적 안정이 지난 7개월 동안 많은 러시아인들이 소극적으로나마 전쟁을 지지케 한 주요 요인이었다.
그러나 9월 들어 우크라이나군의 기습공세로 인해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지역에서 후퇴했고, 러시아 정부는 30만 예비군을 소집하는 부분적 동원령을 발표했다. 패전 소식과 예비군 소집 발표는 러시아 사회를 동요케 했고, 국내 반전시위들이 다시 재개하는 파장을 일으켰다.
일반시민들의 징집없이 정규군만으로도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들어왔던 러시아 시민들에게는 부분적인 동원령 발표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악화시켰다. 예비군 징집이 필요할 정도로 러시아군이 허약한가? 군사작전이 지속되면 부분 동원령의 범위도 확대될까? 언론제재에도 불구하고, 현재 러시아 사회에서는 위기에 직면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애국적인 결집보다는 러시아군의 무능에 대한 비판, 징집을 회피하기 위한 해외도피, 새로운 시련에 대한 체념 등 반응들이 더 표출되고 있다.
미국의 존슨과 러시아의 푸틴은 자국의 전쟁을 국민들에게 ‘제한적 군사작전’으로 묘사하는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의 장점은 시민들의 희생과 부담을 축소하여, 전쟁에 대한 국내반발을 억제하는데 있다. 반면, 군사작전의 기간과 규모를 제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이 선택은 정치적 역풍을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제한적인 작전이라고 안심시킨 국민들에게 더 길고, 더 큰 희생이 왜 요구되는지를 설득해야 하는 난관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설령 정부가 전시희생의 증가는 일시적이거나 한정적이라고 호소한다 하더라도, 이미 손상된 신뢰가 회복되기 어려울 수 있고, 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푸틴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들보다 더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고, 정부와 여당 내에서 푸틴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푸틴이 직면한 군사적 상황은 보다 더 취약하다.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전술적으로는 북베트남의 구정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미군의 반격으로 많은 군사전력을 상실한 공산군은 다시 게릴라전 방식으로 전환했고, 미국은 전장에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구정공세 당시 미군이 허용한 단 한번의 실패로 인한 국내여론 악화는 추후 전술적 승리로도 만회할 수 없었다. 지속적인 국내 반전여론에 순응하여, 존슨 행정부와 차기 닉슨 행정부는 미군의 점진적인 철군을 약속하는 ‘베트남화 전략’을 실시했다.
반면, 하르키우 일대에서 우크라이나군에게 패배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지속적인 공세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 전투의지가 더 높고, 서방의 지속적인 군사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에 맞서 러시아군이 성공적인 반격으로 전세를 단기간 내에 역전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만일,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하는 소식들이 지속적으로 전해지면, 시민들 불신과 반발을 억제하는 러시아 정부의 통제도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비록 정치적 신뢰에 타격을 입었지만, 푸틴은 존슨 대통령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철군이나 평화협상이 아닌 확전을 선택한 푸틴은 현재 점령중인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식적으로 병합하는 절차를 강행하고 있고, 러시아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대량살상무기 사용도 가능하다고 서방에게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푸틴은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보이면, 러시아인들이 전쟁지속의 불가피성에 순응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푸틴의 판단이 옳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국민과의 전쟁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불신과 실망을 초래한 정부라 할지라도, 국내반발을 단호하게 통제하고 회유하면서 전쟁수행에 열중하면, 장기적으로는 승전 내지 성과 있는 협상결과를 이끌 수 있다. 즉 푸틴으로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되는 셈이 될 것이다.
반면, 과거 러시아 통치자들 사례처럼, 강력한 철권통치를 행사했던 정권도 전쟁에 대한 무모한 집착으로 인해 정치적 신뢰가 지속적으로 실추되면, 종국에는 심각한 정권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을 푸틴도 겪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