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러시아 2차대전 승전기념일의 ‘역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영광 재현?

2021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 퍼레이드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에게 승전기념일은 의미심장한 공휴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침공을 격퇴한 러시아에게 승전기념일은 세계를 파시즘 위협에서 해방시켰다는 긍지와 자부심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매년 5월 9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레믈린광장에서는 대규모 승전기념식이 거행된다. 소련 붕괴 30년이 흘렀지만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했던 소련의 붉은군대 깃발이 승전일에는 자랑스럽게 전시된다. 독일군 봉쇄에 도시를 사수한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현 쌍트뻬제르부르그와 볼고그라드) 시민들의 항전, 독일의 기갑군단을 물리친 소련제 T-34 전차의 활약, 외세 침범에서 조국을 수호한 그해 겨울 ‘동장군’은 러시아인의 자부심이 되는 무용담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제2차세계대전의 기억을 자주 강조한다. 독일 침공을 물리치고 나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를 개편한 과거 소련의 역사를 현재 미국과 서방의 견제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국내 결속과 외교적 명분의 동기로 사용하고 있다. 즉, 구소련 지역으로 팽창하는 나토의 동진을 저지하고,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맞서 러시아의 지역패권을 보존하는 다극적 질서체계를 설립하는 것이 푸틴의 러시아에게 있어서는 과거 영광의 재현이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 정부는 과거의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현 우크라이나 정부를 러시아어계 우크라이나인들을 박해하는 ‘신나치’ 정권으로 규정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서방정책으로 인해 나토군이 러시아 국경지대까지 배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과거 독일의 침공과 유사하게 묘사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소위 ‘탈나치화’와 ‘중립화’, 러시아어권 우크라이나 분리지역의 보호를 명분으로 러시아는 올해 2월 말, ‘특별 군사작전’을 실시했다. 만일 이 작전이 단기간에 성공했으면, 푸틴이 올해 승전기념일에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승전을 국가적 자부심에 기여하는 새로운 역사적 업적으로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2차세계대전과 유사한 면들이 있다. 그러나 과거 소련의 무용담을 재현하는 국가는 지금 러시아가 아니고 우크라이나다. 나치 독일의 ‘번개전술에 맞서’ 소련이 수도 모스크바를 사수했듯,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러시아의 속전속결 대공세에서 방어했다. 독일군이 러시아의 겨울 동장군으로 인해 진군 속도가 지연되듯, 러시아군은 ‘라스푸티차’라는 우크라이나의 봄 계절 호우로 인해 도로망이 마비되어 진군의 차질을 겪고 있다. 러시아군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거부하는 하르키우,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 도시들은 과거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처럼 결사항전의 상징이 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나치’ 또는 ‘서방의 꼭두각시’로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권 동부 우크라이나에서도 반러 저항이 거센 전쟁 상황은 역설적으로 러시아가 예전의 독일군이 직면한 상황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군사전력은 러시아가 지금도 우월하고, 일부 전선에서는 전진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고, 러시아의 국방력과 경제력에 막대한 손실을 주고 있다.

국제외교적 측면에서도 과거 소련의 이점을 우크라이나가 누리고 있다. 미국은 소련에게 대대적인 군수물자를 제공했고, 소련군은 전쟁 초기 손실한 장비를 보충하여 반격의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과 서방은 경제적, 군사적 원조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으며, 국제제재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전쟁이 교착된 전시국면에서 세계 여론은 5월 9일 승전기념일 푸틴의 메시지를 주목하고 있다. 만일 러시아의 침공이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러시아의 요구(중립국 선언, 친러시아 분리주의 정부 독립 인정)을 수용하게 하는데 성공했으면, 러시아의 새로운 승리를 자축하는 명분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의 제재가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는, 푸틴이 러시아의 안보 위기감을 강조하면서 전쟁 지속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푸틴이 “군사작전”이라는 우회적 표현 대신 전시상태를 공식 시인하고, 장기전을 위한 러시아인들의 애국적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의 요구에 공감하여 의무 징집 등 장기전에 따른 희생을 수용할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침공한 이 전쟁은 명분이 없으므로 국민적 반대가 커질 것이라고 분석한 반면, 패전에 대한 위기감과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한 이념적 회유에 의하여 다수 국민들이 전쟁의 정당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한 가지 고려할 점은 연패하는 군대는 국민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현재 러시아군이 과거 소련군과 유사한 점이 하나 있다면, 모두 전쟁 초기에 패배했다는 것이다. 소련군은 스탈린의 무능과 정치적 숙청으로 전력이 거의 와해되는 대패를 겪었다. 차기 소련의 지도자 후르쇼프의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소련의 장군이 면전에서 스탈린을 비난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소련군은 패전을 반성하여 군 체계를 재정비하고, 이후 보다 더 향상된 전투능력을 보였다. 현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와의 교전에서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있고, 푸틴 역시 자국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연 푸틴과 러시아군은 비판을 수용하고 군사운용을 개선할 의지와 구상이 있을까?

만일 푸틴이 자신의 전쟁이 러시아 역사에서 제2차세계대전과 같은 승전으로 기억되거나, 최소한 제1차세계대전과 같은 패전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추구한다면, 하나의 역사적 교훈은 재현해야 한다. 바로, 전시 현실에 맞추어서 전쟁방식을 변화하는 군대는 그래도 ‘분전(奮戰)’의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시 지도자로서 푸틴은 현실을 수용한 스탈린과 같을 것인지, 그렇지 못한 니콜라이 2세와 유사할 지에 따라서 러시아 역사,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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