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려거란전쟁’ 드라마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는 교훈
현재 방영 중인 사극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비교하게 된다. 역사를 각색한 드라마이지만, 작증에서 묘사된 외교적, 전략적 선택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시사하는 교훈들은 무엇일까? 역사적 시대와 지정학적 정세는 많이 다르더라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적용될 수 있는 4가지 교훈들을 정리했다.
1. 외교적 기만전술을 사용하고자 하면 반드시 성공해라.
드라마에서는 서경(오늘날 평양) 인근까지 침공한 거란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후방병력을 동원할 시간이 필요했던 고려는 가짜 친교 사신을 거란 황제에게 보냈다. 거란의 황제를 기만하여 거란군의 진군이 멈추고 있는 동안, 후방병력이 서경에 도착하여 고려는 전쟁을 지속할 시간을 벌었다.
단, 일부 고려 중신들은 이 전술을 비난했다. “이번에 우리가 거짓으로 항복했기 때문에, 다음에 우리가 진짜 항복하려고 해도 거란은 우리를 믿지 않을 것이오!” 기만을 당한 거란국 황제는 분노했고, 고려에 대한 적개심이 커졌다. 고려는 다행히도 방어에 성공했고, 드라마에서는 외교적 기만이 전쟁에 흐름을 바꾸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만일 외교적 기만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패배했다면? 패배한 고려는 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꾸준히 선언했다. 그리고 나서 ‘특수군사작전’을 기습적으로 실시하여 한때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기습은 실패했고, 러시아는 국제적 신용을 잃었다. 나아가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을 가지게 되어서, 향후 휴전협상조차 어려워졌다.
2. 전쟁을 시작할 때 명분이 필요하고, 끝낼 때도 명분이 필요하다.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거란은 고려 국왕을 시해한 강조를 벌한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했다. 물론 강조의 처벌여부와 상관없이 고려를 복속하는 것이 실제 목표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거란군 내부에서는 철군을 요청하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거란 황제는 뚜렷한 성과를 달성하기 전에는 친히 지휘한 침공을 중단할 수 없었다. 결국 고려의 왕이 거란으로 친조(親朝)하겠다는 서신을 받고 나서야 거란군은 철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치화’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박해를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예상보다 더 완강한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서방의 지원으로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러시아는 성과 없이 전쟁을 중단할 수는 없어 돈바스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병합과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즉 나토 불가입)을 휴전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휴전 조건들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일부를 영구히 포기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만일 거란이 완전히 철군하지 않고, 홍화진을 포함한 강동6주(지금의 평안북도)를 점령하고자 했으면, 고려도 항전을 지속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휴전할 수 있는 명분을 주면서도 우크라이나에게 큰 영토적 손실을 주지 않는 협상안이 도출되지 못한 것이 전쟁의 교착의 원인 중 하나다.
3. 굴욕적인 휴전을 원치 않으면 전쟁을 지속하라. 단, 장기간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거란군이 수도 개경 가까이 침공하자, 많은 고려 중신들이 항복을 건의했다. 평양 이북의 영토를 거란에게 넘기는 굴욕적인 조건이라도, 개경의 함락과 더 많은 살상을 막기 위해서는 항복이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후손들이 자신들을 매국노라고 지탄하더라도 오명을 자처하겠다는 중신들의 대사도 나온다. 그러나 고려의 현종은 항전을 선택했다. 그 결과 개경이 점령되고, 거란군은 지금의 충주까지 침략했다,
만일 고려 조정에서 조기에 항복했으면, 한반도 남부까지 침공당하는 피해는 방지했을지도 모른다. 영토를 일부 포기하고 국왕이 거란으로 친교를 갔으면, 10년 후 거란이 재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려의 항전의지로 인해 결과적으로 거란과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들을 대부분 수용했으면 전쟁의 장기화를 막고 국토유린과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항전을 선택했고, 상당수의 영토를 수복하는 대 성공했다. 만일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피해를 감수하고 장기전을 지속할 의지가 확고하면, 종국에는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후퇴시키는 승리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요구되는 희생과 시간을 과연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감당할 수 있을까? 장기전으로 인한 승리의 가능성과 증가하는 전쟁의 피해를 사이에 두고 우크라이나는 어려운 저울질을 해야 할 것이다.
4.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힘들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의 결말을 이미 안다. 고려의 최종 승리를 이미 알기 때문에 항전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응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전쟁의 결말은 불명확했다.
드라마에서 나온 몇 가지 사건들이 다르게 전개되었더라면, 어쩌면 병조호란과 같은 굴욕적인 패배로 전쟁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충성스러운 고려 중신들 사이에서도 화친과 전쟁 사이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결말로 끝날까? 우크라이나의 미래, 나아가서 국제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전쟁을 지속해야 할까? 아니면, 러시아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휴전해야 할까?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국제정세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책가들 사이에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물론 불명확한 정세 속에서 외교적 결단도 중요하지만, 드라마에서 묘사된 강경파와 유화파 사이에서 서로의 ‘충심에 대한 존중’은 오늘날 외교 전문가들과 정책가들에게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