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미-러의 ‘합종연횡’ 외교대결
무력전쟁보다 더 어려운 외교전쟁
고대 중국 전국시대에는 합종과 연횡이라는 외교전술이 있었다. 합종은 여러 나라가 공동의 적에 맞서 연합하는 방어적 외교전술이고, 연횡은 이와 같은 동맹국들을 분열시켜 동맹을 무력화하는 공세적 외교전술이다.
나토 군사동맹은 냉전 이후 동유럽국가들을 신규 회원국으로 영입하면서 동쪽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에 안보 위협을 느끼는 러시아는 인접국 우크라이나 역시 서방에 편입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며 작년 가을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군사배치를 증강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활동을 규탄하는 미국과 서방에게 러시아 정부는 두가지 선결조건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영구불허 보장과 동유럽에서 나토 군사자산 배치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조건들은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자율권을 침해하고, 동유럽 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단, 나토-러시아 사이에서 군축협상을 진행할 의향은 있음을 시사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군사침공을 강행하면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양보를 요구하면서 외교적, 군사적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미-러 전면전에 부담
미국과 러시아는 전면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공급측면에서 대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유럽 동맹국들의 경제 피해가 클 것이라는 부담이 크다. 반면 러시아는 서방의 추가 제재와 에너지 교역 중단으로 인한 경제 손실 및 군사작전 강행 시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으로 인한 군사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교착상태에서는 궁극적으로 외교 부담이 가중되는 나라가 먼저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군사적/경제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 우위를 달성하는 국가에게 보다 더 유리하게 이번 사태 추세가 흘러갈 것이다.
먼저 미국에게는 나토 회원국들의 결속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외교과제이다. 영국처럼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지하는 회원국도 있지만, 독일처럼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고려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소극적인 회원국과 독자적으로 러시아와의 협상을 추구하는 프랑스 같은 독립적 성향의 회원국도 존재한다.
에너지 수급이 관건
미국은 러시아와의 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는 유럽국가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유사시 에너지 대체 공급원 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미국 외교관들은 한국, 일본, 인도에게도 필요시 러시아를 압박하는 무역제재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는 한편 유럽 에너지 위기의 대비책으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국가들과 협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미국의 외교공조 전략은 러시아의 외교공작에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이탈리아 재계 리더들과 화상회의를 가졌고, 나토 회원국인 헝가리의 오르반 수상과 공동기자회견에서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를 반대한다는 헝가리 정부의 입장을 확인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일본에게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에게 있어서도 우호국들과 외교 연대는 중요하다. 먼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벨라루스가 자국내 러시아군 배치를 허용하여, 우크라이나의 대한 군사적 압박에 일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미국에 대한 종속을 벗고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푸틴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식에 참석해 중국 시진핑 주석과 나토의 동진확장을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로서는 유럽 국가들과 에너지 교역과 관련해 차질을 빚을 경우 경제손실이 클 수밖에 없어 그 대안으로 중국과 에너지 교역 확대 방안을 협상 중이다.
미국도 러시아의 고립을 위한 외교공작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외교부는 2월 중순, 러시아 정상방문을 예정 중인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방문일정을 취소하라고 브라질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고, 중국에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침공을 지지할 경우 “외교적 부끄러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와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에게 호의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도 러시아에게 외교적 부담이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2월 초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와의 무기교역을 지속하겠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아제르바이잔 역시 러시아-유럽 에너지 교역 중단 시, 유럽의 대체 에너지 공급원으로 주목받는 현 상황에 실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만일 미국의 합종전술이 성공하여 유럽, 중동, 인도, 동아시아 국가들과 공조를 이루면, 에너지 자원으로 유럽을 압박하는 러시아의 외교전술에 큰 차질이 생기고, 오히려 러시아가 예상보다 더 강한 경제제재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러시아의 연횡전술로 러시아와 타협하자는 주장이 나토 내에서 확산되고, 중동, 아시아 국가들이 ‘무개입’을 선택하면, 미국도 독자적 의지만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장기간 대치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외교적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국의 동맹국들과 결속을 강화하면서, 경쟁국의 동맹분열을 유도하는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고양이떼 인솔만큼 힘든 동맹국 통솔’
국제관계에서는 동맹국 통솔을 ‘고양이떼 인솔’로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냉전 이후, 비록 국력에서는 미국이 러시아보다 월등하다 하더라도, 외교력에서 러시아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후자를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최근 몇 년간 외교력 미흡으로 국제 사안에서 실패를 경험한 미국에게는 이번 사태가 외교적 승리를 이루어, 현 국제질서의 조정자는 러시아나 중국 등 도전국가들이 아닌 여전히 미국이라는 것을 증명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