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승전 및 패전사를 통해 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월 24일 새벽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는 장면


신냉전 시기 강대국으로 재도약 vs 탈냉전 시절 후진국으로 추락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라는 초기 전망과는 달리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완강한 우크라이나의 항전으로 인해 수도 키이우를 포함, 주요 도시들을 조기에 장악하는데 실패했다. 국제사회가 침공을 규탄하면서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고, 서방의 경제제재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러시아군이 군사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우위이지만,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규탄을 무릅쓰고 강행한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과거 역사에서 러시아는 ‘영웅적인 승전’과 ‘굴욕적인 패전’을 모두 경험했다. 대표적인 승전사례로 18세기 러시아-스웨덴 대북방전쟁,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전승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반면 19세기 크림전쟁, 20세기 초 러일전쟁, 20세기 말 아프간전쟁에서의 패전은 러시아의 체제 혼란과 붕괴 결과를 초래했다.

러시아의 승전사례를 살펴보면 두가지 공통요인이 있다. 첫째, 강력한 외세 공격이 오히려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통치자의 지휘 하에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웨덴, 프랑스, 독일 등 당시 강대국 침공으로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가 전투에서 연패했고, 수도가 파괴되거나 수많은 국민들이 전사하는 악재를 겪었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는 러시아인들에게 전시고통을 감수케 하는 항전의지를 부여했고, 침공한 적들이 러시아의 강추위에 적응을 못하고 주춤할 때, 러시아군은 지구전으로 전세를 연전했다.

대북방전쟁 당시 러시아군 이동로

둘째, 러시아가 승전한 전쟁에서는 동맹국들 지원이 있었다. 대북방전쟁에서는 폴란드, 덴마크, 독일 제후국들이 스웨덴을 후방에서 교란해서 러시아에게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나폴레옹전쟁에서는 영국의 지원으로 나폴레옹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국의 지원으로 히틀러가 양면에서 포위되어 러시아가 승리했다. 동맹국들의 협공 없이 러시아가 자력만으로 전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1812년)

반면, 러시아의 대표적인 패전사에서는 이 두 요인이 결여되어 있다.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의 명분에 공감하지 못할 때, 러시아는 더 약한 나라에게도 패전했다. 러일전쟁, 아프간전쟁에서 러시아인들은 타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인한 군사적, 경제적 손실에 반발했고, 종국에는 반체제 봉기로까지 이어졌다. 러시아인들이 극동과 중동에서의 전시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동기를 국가가 설득력 있게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맹국과 전쟁부담을 분담하지 못하고, 러시아가 단독으로 싸운 전쟁들도 대부분 패전으로 끝났다.

러일전쟁 그림

러시아의 팽창을 우려한 유럽 열강들은 크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공동으로 대적하거나 방관했다. 아프간전쟁 당시 미국, 중국, 파키스탄이 아프간반군을 지원하여 소련을 견제했을 때, 소련은 동맹국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권이 국내 지지를 받지 못하고 허약해서, 거의 단독으로 10년간 전쟁을 수행하다 결국 철군했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양상에서 과거 러시아의 승전요인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러시아에게 불리한 점이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안보위협으로 규정하여 선제공격을 했지만, 러시아 국민들이 느끼는 안보 위기감은 타국이 러시아를 군사침공 했을 경우와 다를 것이다. 과연 러시아 경제가 악화되고, 국제적으로 고립되어도 국민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쟁을 지원해야 할 만큼 우크라이나에서의 철군이 러시아에게 국가적인 위협이 될까?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러시아 정부는 파병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하는 부담에 직면할 것이다. 과거 러시아는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들을 활용하는 대리전을 사용했다. 가령 한국전쟁에서는 북한 정부, 시리아 내전에서는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여 전쟁에서의 주요 책임과 부담을 회피하고, 동맹정권 지원을 명분으로 군사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등 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 정부들에게 군사지원을 제공했다. 하지만, 현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이런 분리주의 정부들의 영토 내에 국한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부 러시아어권 주민들의 자치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했다고 주장했지만, 러시아군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도 시민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을 분담할 동맹정부가 없이는 지역주둔과 통치라는 부담을 단독으로 지게 될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이런 요인들은 간과하고 현재 양상대로 전쟁을 지속한다면, 패전의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이번 전쟁을 러시아의 자충수로 분석하는 시각들도 존재한다. 반면, 전쟁 양상이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 결말을 예측하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현재 서방이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자제하고, 우크라이나를 후방에서 지원하는 전시상황에서는 서방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러시아 국민들의 공감을 받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

만일 나토군이 개입하여 서방 대 러시아 군사대결 구도로 확전이 되면, 러시아의 패전에 대한 위기감과 서구에 대한 반감이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지배할 계획을 포기하고, 친 러시아 분리주의 정부들의 독립과 영토확장으로 목표를 수정하면, 국제사회의 중재로 승전도 패전도 아닌 휴전으로 끝날 수 있다.

분명한 점은 러시아의 역사가 다시 변곡점에 서있다는 것이다. 신냉전 시기 강대국으로 재도약하든, 탈냉전 시절 후진국으로 추락하든, 이번 전쟁은 국제 질서에서 러시아의 위상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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