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실패했지만 역사에 성공한’ 고르바초프와 ‘우크라이나 침공’ 푸틴

고르바초프와 푸틴(오른쪽)

경주는 당唐의 장안長安, 사라센 제국의 바그다드(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더불어 당대의 세계도시였다. 인구 90만으로 후일 조선 한양의 4배가 넘었다.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석굴암이 발굴된 것은 1907년 한일합방 직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화급하게 복원되었으나, 오늘날 다시 정성들여 복원되고 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는데 지금 보는 것은 이 석굴암이다.

설총의 이두는 한글이 창제되기 전 백성의 문자였다. 아버지는 원효대사, 어머니는 요석공주인데서 보듯이 신라 최고의 집안이다. ‘국보’ 양주동 박사의 이두 연구는 우리 문화 연구의 금자탑이다. 문무대왕은 당시 세계제국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 대당對唐 전역戰曆이 삼국사기에 간략하게 기록되고, 조선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사대외교를 기본으로 삼는 터에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신라와 발해의 교류도 극히 간략하다. 진震(발해의 국호)과 일본과의 교류와 그에 대한 기록은 일본에 많이 남아 있다. 신라와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귀한 남북국 시대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미르타주박물관은 러시아 여제 에카테리나가 이룩한 것이다. 여제는 본래는 프로이센 출신이었다. 러시아 말을 쓰지도 않고 프랑스어로 소통했는데 당시 유럽 왕실에 프랑스어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여제는 볼테르 등과 교유한 계몽주의자였다. 푸틴 등 오늘의 러시아는 개명 러시아를 상징하는 에미르타주박물관과 별개다.

푸틴은 스탈린을 흠모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희극 배우 출신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항복을 요구했는데 원래의 절차는 정전협상이다. 이것은 싱가포르 전투에서 야마시타 도모유키의 ‘예스까 노까’(yes or no)와 같다. 현대의 희극이다.

고르바초프의 저서 <선택>. 사진 오른쪽은 부인 라이사

1980년대 소련은 ‘고르바초프 혁명’을 겪었다. 고르바초프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 가운데 있던 소련을 해방시켰다. 부인 라이사의 지성과 미모, 인기는 서유럽의 어느 여성에 못지않았다. 고르바초프는 부시 대통령과 더불어 베를린의 벽을 허물어 독일 통일과 동서냉전 해체가 되었다.

그는 비록 정치에 실패했지만 역사에 성공했다. 1991년 퇴임연설에서 고르바초프는 “이 나라는 자유를 얻었으며 정신적·정치적으로 해방됐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미국의 링컨, 인도의 간디에 버금가는 인물로서, 러시아에서와 달리, 인류사에서는 위인偉人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래야 문명국가로 대접받는다. 시진핑은 속이 좋지 않을 것이다. 외교는 이상이 아니라 국익에 따라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가는 길을 좇는 것이 국익에 일치한다. 푸틴과 시진핑 같이 세계의 경멸을 받는 리더에 눈길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국익에 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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