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가족’···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갈등 겪는 러시아 가정 ‘조명’

안드레이 로샥의 <부서진 가족>

안드레이 로샥 감독, 전쟁으로 갈등 겪는 러시아 가족들의 고통 다큐로 제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5개월이 지났다. 러시아의 조기 승리를 예측하였던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전쟁은 결말이 보이지 않는 대치전과 공방전이 지속되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들 분석에 의하면 러시아군은 그동안 2만명이 전사하고 6만명이 부상하는 전력손실을 겪었고, 우크라이나 역시 매일 100명에서 200명에 이르는 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러시아 가족들을 분열시켰다. 오빠와 여동생, 할아버지와 손자, 아내와 남편, 엄마와 딸, 전쟁에 대해서 상반된 이견을 가진 가족원들이 갈등을 겪고 불신과 대화 단절로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독립 영화감독 안드레이 로샥(Andrey Loshak)의 신작 다큐멘터리 <부러진 관계>(Broken Ties)는 전쟁으로 인한 가족간 반목을 조명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Andrey Loshak는 러시아에서 조지아로 이주했다. 이주 이후,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취재하는 다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3개월간 Loshak은 해외와 러시아 내부 여러 지역에 살고 있는 일곱 가족을 취재했다. 다큐멘터리는 6월 19일, 자유유럽라디오방송(Radio Free Europe)과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방송(Voice of America)에 의하여 러시아어 언어, 영어 자막으로 배포되었고, 유투브 상으로는 1500만명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가족을 취재한 다큐이지만, 모든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가족이 서로 떨어져 사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가족원을 함께 인터뷰 하기에는 이미 갈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하지만 다큐에서는 이따금 한 가족원 인터뷰를 다른 가족이 듣고 있는 영상화면이 캡처되어 있다.

100분 분량의 다큐는 전쟁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대립되는 시각들, 찬성과 반대 내부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들을 조명했다. 다큐에 등장하는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흑백 이분법으로 마냥 구분하기는 어렵다. 현 상황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여러 인터뷰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찬성하는 가족과 반대하는 가족 사이의 간극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인터뷰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러시아 우랄지역에 살고 있는 한 은퇴 여성은 인터뷰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뽑지 않았다고 한다. 푸틴정부의 연금정책에 실망했고, 러시아 정치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미국과 서방에 맞서서 조국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반면, 영국에 사는 딸은 자신의 모친이 다른 정책에서는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고, 불신하면서도 전쟁에서는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2. 최근 러시아가 함락시킨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플이 고향인 러시아 한청년은 지금은 러시아에 살고 있으며, 러시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자신의 고향도시가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대가 더일찍 도시를 포기했다면,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우크라이나를 비판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여동생은 지신의 오빠를 포함한 많은 러시아인들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3.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살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은 다른 러시아 도시에 살고 있는 딸의 안전을 걱정한다. 적극적으로 반전시위에 참여하는 자신의 딸이 구속되지 않기를 걱정한다. 어머니는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들과 군인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전사한 군인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용납할 수 있는 결말로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큐에 나온 러시아인들은 인터뷰에 왜 응했을까?  전쟁을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Loshak 감독의 성향을 인터뷰 참여자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찬성하는 한 여성은 자신이 인터뷰에 참여한 이유를 다큐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딸이 나한테 ‘엄마, 도시 어디에도 내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공간이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요’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에 응하면, 내 딸은 전쟁에 반대하는 쪽에서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얘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딸은 이를 통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거 같아 다큐 인터뷰에 응했다.”

전쟁이 종결되고 나서 부러진 가족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회복의 가망이 없다 생각하여 사실상 결별상태로 들어가는 부부, 다큐 참여를 계기로 직접 소통하고 상호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로 한 모녀 등등 인터뷰 참여자들은 다양한 결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는 엄마다. 엄마는 조국과, 딸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고 인터뷰에서 답변한 러시아 여성의 말처럼 러시아 가족들은 전쟁에 대한 상반된 견해에도 불구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다큐는 시청자 특히 러시아인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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