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고려인마을③] ‘구소련친구들’ 황원선 대표 “김해에도 통합지원센터 필요”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고 있는 사람들. 임영상 필자, 황원선 대표, 안윤지 소장, 조호연 교수(왼쪽부터)


매일 300통 전화받으며 다문화 상담…
부산서 김해로 이주 ‘구소련친구들’ 결성

1966년 부산에서 출생한 황원선씨는 부산에서 정수기판매사업을 하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정수기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가서 12년 동안 생활했는데, 그때 러시아어도 익히고 고려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몸져누워 있을 때 찾아와 “우리는 한인이다. 가족이다. 동포다. 한민족”이라고 하면서 밥까지 차려주었던 고려인동포의 도움을 잊지 않고 있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김해에 도움이 필요한 고려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해에 정식 사무실을 열고 고려인들과 함께 2015년 2월 구소련친구들을 결성했다. 창원에도 구소련의친구들 지회가 있다.

고려인들이 황 대표를 찾는 이유는 대부분 전세계약서 작성과 회사 면접 시의 동행 등 생활 속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가 났을 때나 한국인과 다툼이 생겼을 때도 전화를 주고 있다. 또, 숙소와 직장, 혹은 병원과 약국에서 스피커폰을 통해 통역을 요청하는 일도 많아졌다.

“Mr. 황, 내가 지금 병원에 가는데, 30분 후에 의사 선생님 만날 때 스피커폰으로 전화할게요. 통역 부탁해요.”

광주 고려인 여성이 요청한 내용이 담긴 문자. <황원선 대표 제공>


황원선 대표는 매일 200~300통 전화를 받는다. 370통까지 받은 날도 있다. 김해뿐 아니다.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고려인동포들이 안산과 광주, 그리고 심지어 우즈벡으로 돌아간 상태에서도 4개의 공동체 단톡방을 통해 문자를 보내고 또 무료 스마트폰으로 전화 통역도 해주고 있다. 최근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고 하자, 기저질환 미상으로 국민건강보험처리가 되질 못 해 치료비 등 도움을 요청해 공동체 단톡방과 페이스북에 올려 도움을 줬던, 광주 거주 고려인 여성이 보낸 의사소견서와 문자와 황 대표가 보낸 문자 일부를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황원선 대표는 별도의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받지 않고 구소련친구들과 운영하고 있다. 구소련친구들의 4개 공동체에 가입한 고려인들이 내는 회비로는 사무실에 있는 통역사 2명과 활동가 1명의 임금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자신이 운영하는 작은 노래방의 수익금을 대부분 단체 사무실의 운영 경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제 김해시와 경남도가 김해에 정착하고자 하는 귀환 고려인동포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황원선 대표와 안윤지 소장

2019년 10월 아시아발전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방의 고려인마을을 둘러볼 때, 한중문화학당 일행은 김해에 사는 사할린 한인의 소개로 부원동 구소련친구들 사무실을 찾았다. 대화하는 중에, 황원선 대표가 우리에게 꼭 만나서야 할 분이 있다면서 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 안윤지 소장께 전화했다. 황 대표는 3년 연상인 안 소장을 ‘누님’으로 깍듯이 모시고 있었다. 구소련친구들은 김해살이를 시작한 고려인동포의 초기정착을 돕는 ‘창구’로, 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는 고려인동포에게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장’으로 서로 합력(合力)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2022년 5월 다시 김해의 활동가인 황원선 대표와 안윤지 소장은 이구동성으로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은 고려인과 결혼한 타민족 배우자(F1)도 최소한 아르바이트라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불법으로 일하다 보니 형편없는 저임금을 감내하다 또 엄청난 벌금을 받기도 하는 현실에 대해, 고려인과 결혼한 타민족도 고려인 가족으로 수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 정부(법무부)는 재외동포(F4)와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에게 각기 2014년과 2015년부터 자녀동반을 허용했다. 동포 사회의 한국 ‘정착’은 이미 오래 전부터 트렌드가 되었다. ‘귀환’ 동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구소련에서 들어온 고려인동포는 이미 한국어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만큼 한국살이가 어려워서, 광주광역시(2013)를 시작으로 경기도(2016), 인천광역시(2018), 그리고 경남도(2020)까지 고려인주민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조례만 제정했지 고려인의 정착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정 지원은 아주 미약한 형편이다.

다만, 경기도가 2019년부터 공모사업을 통해 도내 5개 고려인지원단체에 5천만원 내외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주민 지원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고려인 주민통합지원센터’ 설치를 명시한 광주광역시와 인천광역시도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후발주자인 경남도는 제5조(지원사업)에서 명시한 5항(한국어교육, 통번역 서비스 등 언어지원)과 6항(고려인 주민 자치모임 및 지원단체 지원)만이라도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나아가 제6조(위탁) 지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나 전문 시설을 갖춘 단체를 위탁해야 할 것이다.

경남에서 고려인주민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곳은 진영읍을 포함한 김해시이다. 따라서 이미 김해 고려인주민의 교육장(글로벌드림다문화연구소)이자 창구(구소련친구들)를 갖추고 5~8년을 소임을 다하고 있는 단체를 중심으로 김해고려인통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고려인주민 지원사업을 위탁, 운영해야 할 것이다.

광역시가 아니나 귀환 고려인동포의 ‘고향’인 안산시가 고려인이주 150년을 기념하여 중앙정부의 지원까지 끌어들여 설립한 안산고려인문화센터에 연 2억원 이상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고려인 및 지역주민 지원사업을 (사)너머에 위탁, 운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안산 너머에도 대학의 고려인 연구자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김해의 경우에도 러시아에서 유학한 경남대 사학과 교수가 있어 좋은 협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경남도 김해시는 경기도 안산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이어 ‘귀환’ 고려인동포가 집거하고 있는 한국의 ‘아시아촌’ 중의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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