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달성 고려인마을①] 경남도가 ‘창녕고려인마을’ 지원해야 할 이유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19년 10월 필자는 동료들과 아시아발전재단의 지원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지방의 고려인마을을 방문했다. 1차(10월18~20일)는 충남 당진, 아산, 천안, 충북 청주, 광주광역시, 2차(10월25~28일)는 경북 경주, 부산광역시, 경남 김해와 창녕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아쉽게도 마지막 방문지인 창녕엔 들르지 못했다.
2022년 12월 16일 오전 10시 경북대 학술행사 발표를 서둘러 마치고 창녕 고려인마을 랑데뷰카페로 가서 고려인 음식으로 점심 대화를 갖고자 했다. 그런 후에 경주 고려인마을로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랑데부카페 이베라 사장의 일정으로 오후 2~3시 사이에 방문해야 했다. 일정을 바꾸어 먼저 경주 고려인마을을 들르고 오후 3시 가까이 창녕에 도착했다.
랑데뷰카페에는 이베라 사장과 그녀의 조카인 이지언 고려인 보험설계사, 김해고려인마을 황원선 ‘구소련친구들’ 대표도 기다리고 있었다. 타슈켄트에서 식당 영업을 했던 이베라 사장이 2017년 개업한 랑데뷰카페는 창녕 고려인사회의 사랑방이다. 이베라와 이지언 두 사람은 모두 타슈켄트 주 ‘북쪽등대콜호즈’ 출신이었다.
필자가 <타슈켄트주 ‘북쪽등대콜호즈’의 김게오르기, 문화일꾼에서 한국어 교사로>를 썼다고 하자 두 사람은 콜호즈의 65번 학교를 나왔고 김게오르기 선생에게서 한국어를 배웠고 김게오르기 선생이 친척이라고 했다. 갑자기 두 사람은 필자를 고향사람 만난 듯이 반갑게 대해주었다. 필자도 얼마 전에 작고한 김게오르기 선생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중치르치크 구역 ‘북쪽등대콜호즈’는 타슈켄트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치르치크강 연안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등대’라는 이름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1937년 러시아 연해주 올가군 ‘북쪽등대’ 어업콜호즈를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1938년 봄 만든 고려인마을이다. 처음 치르치크강변에 도착했을 때 갈대가 무성한 습지였으나, 고려인들은 특유의 근면함으로 폴리타젤, 프라우다, 시온고, 김병화, 드미트리 등 고려인 콜호즈 등을 만들고 대부분 수년 내에 부자 농촌마을이 되었다. 김병화, 황만금(폴리타젤), 박연옥(북쪽등대) 등 100명이 넘는 ‘사회주의 노동영웅’이 치르치크강변의 고려인 콜호즈에서 배출되었다.
창녕의 고려인마을, 2년 전 상태와 전혀 변함이 없다
<동포세계신문> 2019년 12월 3일자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창녕 거주 고려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국어 문제였다.
“한국어를 못해 겪는 어려움이 많다. 한국어를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한때는 교회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준다고 해서 30명 정도가 참여했지만, 러시아통역 없이 하다 보니 못 알아듣는다면서 인원이 많이 줄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고려인들이 있는데 별도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꼭 2년 전 아시아발전재단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조사연구팀이 방문한 후에 나온 기사의 일부이다. 그때 이베라 사장은 “한국어를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창녕에는 여전히 한국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고려인동포를 지원하는 단체가 없다. 전국의 고려인마을마다 한국인 활동가가 고려인동포를 돕고 있는데, 창녕은 그렇지 않은 듯이 보였다. 환갑이 넘은 이베라 사장이 창녕 고려인사회의 리더이지만, 그렇다고 고려인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전국에서 최초로 인천 연수동 고려인동포들이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를 만들었는데, 한국인 활동가의 도움 덕택이었다.
같은 고향 콜호즈 출신인 이베라 고모의 요청으로 8년 전 창녕에 온 이지언씨는 더 구체적으로 고려인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고려인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1학년 또는 2학년 낮춰 학교에 가는 것을 억울해하고 있어요. 한국어 실력 때문인데, 그래서 고려인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혹은 학원 교육이 필요해요.” 김해 고려인마을 구소련친구들 황원선 대표도 거들었다. 덩치가 큰 고려인 아이들이, 한국어가 서툴러도 동생뻘인 한국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고려인 아이들끼리 러시아말로만 이야기해서 학교생활 적응이 더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아버지가 광주, 어머니가 전주 출신인데 창녕의 고려인동포를 위해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가서 통역도 해주고 있는 이베라 사장, 2년 전 보험설계사 자격까지 취득할 정도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초등학생 어머니인 이지언씨. 그러나 그들의 한국어는 한국에 살면서 배운 ‘길거리 한국어’다. 타인에게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정도는 아니다. 2015년경부터 가족동반으로 들어오는 고려인동포들도 이미 어느 고려인마을이 자녀교육에 좋은 곳인지, 알고 이동하고 있다. 황원선 대표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려인 여성도 자녀교육 때문에 김해로 이주한 사례였다. 창녕 지역사회의 지원과 도움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창녕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가능한 인구감소 지역
2022년 10월부터 1년간 법무부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의 생산인구를 늘리기 위한 적극적인 이민정책의 하나로 우수인재(유형1)와 동포가족(유형2)을 정착시키려는 사업이다. 당연히 외국인/동포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한 한국어교육 등의 사업이 필연적으로 수행될 예정이다.
전라북도는 6개 시군, 전라남도와 경상북도는 각기 5개 시군,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각 2개 시군, 그 외 부산광역시(3개구)와 대구광역시(1개구), 경기도(2개군)와 경상남도(1개군)도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지자체마다 동포가족을 유치해야 하는 유형2 사업에 관심이 적다. 만일 창녕군이 내년 사업에 지원해 참여한다면, 창녕군은 이미 고려인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고려인) 동포가족 유치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사실 전국 지자체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결혼한 다문화가족을 위한 (다문화) 가족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창녕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2013년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여러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동포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한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경상남도도 2020년 5월 14일 ‘경상남도 고려인 주민 지워 조례’를 제정한 상태다. 이미 2년이 넘었다. 김해시(동상동, 진영읍)와 창녕(창녕읍)이 고려인마을이 형성되었음에도 아직 경남도 차원에서 지원사업이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아래는 경상남도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 제5조 ①항 내용이다.
제5조(지원사업) ①도지사는 고려인 주민의 지원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1. 고려인 주민 실태조사 및 연구사업/ 2. 고려인 주민의 처우 개선에 필요한 시책/ 3. 경제적 자립을 위한 취업·창업 지원/ 4. 차별 방지 및 인권옹호를 위한 교육·홍보/ 5. 한국어교육, 통번역 서비스 등 언어지원/ 6. 고려인 주민 자치모임 및 지원단체 지원/ 7. 도내 고려인 주민 집중 거주지에 대한 주거 및 환경 개선 사업/ 8. 자녀돌봄 및 영육아보육 지원/ 9. 문화·예술·체육행사/ 10. 응급구호 등 보건의료 지원/ 11. 그 밖에 도지사가 고려인 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김해 고려인마을에도 지원사업이 필요한 실정인데, 창녕 고려인마을은 더 절실하다. 특히 ‘한국어교육, 통번역 서비스’ 부분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창녕의 고려인동포 사회의 리더인 이베라 사장은 조카 이지언 씨와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창녕고려인마을’ 단체를 만들어보자. 그런데 고려인들만의 힘으로 자조단체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이 또한 한국사회가 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