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동포’의 ‘한국에서 살기’ 저서 나올 때 됐다”···조선족 이홍매 기자의 ‘일본에서···’처럼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조선족입니다. 제일 잘하는 언어가 일본어이고 그다음은 영어 한국어 중국어입니다. 앞으로 저와 깊은 인연을 가진 일본 중국 한국 영국 이 네 나라의 은공을 갚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91쪽)
이홍매의 <일본에서 살기>의 제2부 [산다는 것은 …] 수필 중의 한 편인 “케세라세라: 희망은 늘 과제와 함께” 글에 나오는, 일본에서 자란, 작가의 아들이 취업을 앞두고 면접관에게 자기의 복잡한 정체성을 조심스러워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성’을 내세워 어필하려고 했던 말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2011년 12월 교토 류코쿠대학에서 개최된 제4차 재일본 중국조선족 국제심포지엄에서 만난, 당시 일본조선족연구학회 이강철 회장이 했던 나의 정체성은 ‘동북아시아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 한국의 <동북아신문>에서 이강철 교수의 “나의 동북아 4국지- 생존 분투의 길에서”가 연재되고 있다. 이강철 교수를 만난 것은 몇 차례 학술모임에서가 전부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이강철 교수의 민족과 나라를 넘어선 ‘동북아시아인’이라는 소신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홍매의 『일본에서 살기』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일본에서 뿌리를 내린 장년 세대의 다음 세대로 4개 언어를 구사하는 청년 세대를 통해서.
필자가 이홍매 기자를 만난 것은 2016년 12월 26일 도쿄에서다. 벌써 8년이 지났다. 2016년 12월 26일부터 27일까지 필자는 당시 한국외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이자 교육부의 <BK21+ 에스닉-코리아타운 도시재생 사업단> 단장으로 일본조선족연구학회(회장 장형규)와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학술회의 주제, <에스닉타운 연구와 한민족 문화교육>도 고려해서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오쿠보지역센터 세미나실에서 가졌는데, 당시 일본조선조학연구학회 부회장 겸 사무국장인 권향숙 교수의 소개로 <길림신문> 일본 특파원 이홍매 기자가 참여한 것이다.
그날 학술행사 후에 권향숙 교수를 통해 이홍매 기자가 작성한 학술행사 기사와 사진을 받았는데, 기사도 좋았지만, 사진도 참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이홍매 기자와는 대면 기회가 없었지만, 일본조선족연구학회 위챗 단톡방에서 그가 연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기자로서 일본 내 조선족활동 등에 대한 취재뿐만 아니라 작품 활동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2022년 1월 권향숙 교수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길림신문사 일본의 특파원을 하시는 이홍매 기자님이 한국에서 책 출판 가능성을 모색하고 계십니다. 신오쿠보에서 학술회의를 했을 적에 오신 기자님이신데 기억하시죠?”
이홍매 기자가 <길림신문> 특파원으로 일본의 여러 현장을 누비면서 취재했던 여러 기사, 또 수필들을 하나로 묶어서 책을 내려고 하고 있는데 한국의 출판사, 특히 그중에서도 가능하면 북코리아를 소개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왔다.
북코리아 이찬규 사장께 연락했다. 일본의 조선족으로 참 특별한 분이다. 그가 쓴 일본 조선족 사회 탐방 기사와 일본 생활 글들은 일본의 조선족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우리 중국동포, 그리고 동북의 중국조선족 등 세 지역에서 아주 뜻깊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일 것으로 보인다.
북코리아에서 원고를 검토하고 연락하겠다는 답변에 이어 연변말 등 신경을 써야 할 부분도 있지만 출판하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그 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2년 8월 1일 이홍매 기자로부터 “<일본에서 살기>라는 저의 책자가 출판에 이르도록 힘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요즘 교정을 보는 단계에 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2022년 11월 초 북코리아 이찬규 사장이 책을 보내왔다. 먼저 신문기사 모음인 3부 [특파원의 기록_인물]과 4부 [특파원의 기록_커뮤니티] 편을 읽었다. 필자가 직접 만난 일본조선족연구학회 회장인 정형규 교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본과 중국에서 만난 조선족 교수들을 다시 떠올렸고, 10년 이상 도쿄 샘물학교를 지켜온 전정선 교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유연숙 박사와 함께 치바현 전정선 교장 집을 방문하고 샘물학교 현장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제1부와 2부 [살아보니 꽤 살만한 수기], [산다는 것은 …_수필] 편을 읽으면서는 몇 차례 일본에 다니면서 후학인 유연숙, 손미경 박사와 대화하면서 들었던 일본인과 일본사회 이야기를 다시 작가의 경험을 통해 공유할 수 있었다. 특히 서두에 언급한, 작가의 아들이 취업전선에서 당당하게 밝힌 정체성 이야기는 이주민 모두가 자녀교육과 관련 참고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홍매의 <일본에서 살기>를 읽는 중에 한국에 사는 중국동포들도 꼭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북코리아에 국내 동포언론사 대표/편집국장 주소를 알려주면서 책을 보낼 것을 권유했다. 예상대로 동포언론들이 모두 <일본에서 살기> 책을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는 영상인터뷰까지 하고는 유튜브로도 올렸다.
마지막 6부 [특별인터뷰_신문기사]에 실린 두 편의 글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오무라 마스오와 조선족문학” 글을 통해서 우리 윤동주 시인을 발굴하고 다시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일본인 연구자라는 사실에 일본의 양식을 다시 확인했다. 최근 오무라 마스오 선생이 작고한 사실을 이홍매 작가에게서 듣고 바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잔류 일본인 고아 이케다 스미에” 글을 읽고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서 한반도를 떠나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후에 소련 사회의 존중받는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다시 끝나지 않은 ‘유랑’을 계속하는 고려인동포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난민으로 한국에 온 고려인동포 문제다. 중국동포와 달리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동포의 ‘귀환’을 우리 사회는 ‘동포’가 아니라 ‘이주외국인’으로 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2015년 3월, 퇴직 3년을 앞두고서 이제 해외에 사는 동포가 아니라 한국 정착을 희망하는 ‘귀환’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안산에서 아시아발전재단 조남철 상임이사(전 방송대 총장)를 다시 만난 후에 필자의 관심은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국 30여 곳의 동포와 외국인집거지를 탐방, 조사할 수 있었다.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 등과 함께 발로 뛴 결과로 2021년 4월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위키백과와 연결된 스토리 가이드북>이 나왔다. 다시 2023년 2월 <한국에서 아시아의 비전을 찾는다> 책이 나온다. 귀환 동포와 또 아시아 출신 이주민의 <한국에서 살기>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합력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이홍매의 <일본에서 살기> 책을 읽으면서 다시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