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침묵으로 헤아려본 섭리

여호수아 6장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수 6:10)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침묵 명령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요? 열띤 논쟁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 정복 방식에 대한 온갖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결국에는 설득력을 지닌 몇 가지 주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각 진영은 나름의 근거와 논리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지 않았을까요? 설득당한 사람들, 반박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무시하는 사람들, 밀어붙이는 사람들, 감정이 상한 사람들, 3일 정복론자들, 6일 정복론자들, 정복 무용론자들 등이 쏟아내는 말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답이 없는 상황에 봉착했을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는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동료 정탐꾼 10명의 말 몇 마디에 백성 전체가 어떻게 휘둘렸는지를 여호수아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모두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논리적이었다고 해서 ‘옳은 말’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논리상 옳았을 뿐이지, 섭리상 옳지는 않았습니다.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말은 단순히 ‘의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던진 말 한마디가 공동체를 흔들고, 신뢰를 무너뜨리며,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명령했습니다. 침묵하라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말의 과잉이 아닐까요?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아무 데서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을 쏟아놓기 바쁩니다. 말의 과잉이 빚어낸 복잡성을 우리는 체감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각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각자 소견에 옳은 말이 난무한다면, 그것을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은 충분히 나누어질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말을 줄여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지만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말이 논리를 헤아리는 방법이라면, 침묵은 섭리를 헤아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G8qk3lhcAFc?si=b2A-aA8ItcSrDP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