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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에서와 야곱의 화해’…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시간조차 일하시는 하나님
피터 파울 루벤스, ‘야곱과 에서의 화해’ *잠깐묵상 | 창세기 33장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4) 20년 만의 재회입니다. 형과 동생은 한 번도 건너보지 못한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동생은 형의 축복을 가로채 야반도주했고 형은 동생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각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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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일 때는 몰랐는데 속아보니 알게 되는 것들
하나님은 종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으로 우리를 밀어넣으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라반 밑에서 보낸 2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20년의 세월 동안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동생이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 인생에는 다양한 강도, 다양한 종류의 라반이 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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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보상의 선례, 놀부의 딜레마
놀부전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세기 18:2) 길에 서 있는 나그네를 발견한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달려가 그들을 영접하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습니다. 계산 없는 환대 끝에 아브라함은 사라의 임신 소식도 듣고 소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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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문섭 칼럼] 글은 독자의 것, 기쁨으로 쓰고 하나님께 맡기다
석문섭 이미지 나는 이 일이 즐겁다. 성경의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오다 주웠다’는 말처럼, 성경을 읽는 길에 줍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는 자꾸 눈길이 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선이 빼앗길 정도로 특별한 것이다. 마치 유치원 다녀온 아이의 가방 속에 있는 잡동사니들처럼. 유치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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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 존재를 기뻐해 주는 사람 곁에서 비로소 숨을 쉬다
‘돌아온 탕아’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 작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상) 나는 왜 ‘없지’ 않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원래 없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굳이 이 땅에 있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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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석문섭의 기울임] 큰 소리에 묻힌 작은 목소리들
한목소리라는 게 존재할까? 큰 목소리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자연에는, 세상에는 작지만 무수한 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큰 소리다. 어떤 진영에서, 집단에서, 조직에서, 사회에서 하나의 소리가 들릴 때, 그건 한목소리이기 전에 큰 목소리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큰 소리 아래 묻혀버린 작은 소리들이 있다는 거. 오늘날 우리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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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달력과 시계를 그만 보고…
어둔 밤 쉬 되리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정말 편리한 세상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것들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이처럼 좋았던 때가 인류 역사에 있었을까요? 어제 주문한 택배가 지금 어느 물류센터에서 몇 시 몇 분에 출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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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옥은 어떤 곳일까?…’죽지 못해 사는 길’과 ‘죽어서 사는 길’
천국은 죽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죽어서 진짜로 사는 곳입니다. 죽어야만 사는 역설적인 세계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자, ‘살았으나 죽은 자’의 세상이 지옥이라면 ‘죽어도 사는 자’의 세상은 천국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단테의 <신곡>(神曲) 가운데 지옥문 위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글귀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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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천국’ 정원 선착순 마감?
사이비는 진짜보다 더 진짜같다. 그래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진실한 것 진짜를 가려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국민일보>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 만약 이 구절에 기록된 144,000명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실제 정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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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계시록의 첫 문장…”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Apocalypse), 이 단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종말의 현상들’입니다. 대중매체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공포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미지로 소비됩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성도들에게조차 계시록은 여러 숫자와 상징을 이용해 종말의 시점을 해독해내야 하는 난해한 암호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너무 중요한 첫 문장을 놓치고 계시록 읽기를 시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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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완벽하게 성취해 놓고 ‘세상을 이겼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 그들은 정말 세상을 이겼을까요? 승리한 것은 로마였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 밥이 되었고, 화형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어두운 지하 카타콤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숨어 사는 게 승리자의 삶인가요? 어떤 이들은 지하에서 평생 햇빛 한 번 제대로 쬐지 못하고 살다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지하 감옥에 무슨 승리가 있었겠습니까?-본문에서. 사진은 카타콤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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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무신론은 가능한 결론인가..”역사와 인간 경험의 방대한 데이터 앞에서”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 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화가는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한 화가로, 인간과 자연, 신앙적 사유를 결합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세계 앞에 선 인간 이성을 그린 작품이다. 안개는 미지의 역사와 경험을, 방랑자는 그 속에서 질서를 추론하려는 사유의 주체를 상징한다. 과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패턴을 파악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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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말씀의 전차 위에서 인간 이성은 무너진다
칼바르트 저 <로마서> 정말 오랜만에 바르트의 책을 펼쳤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거대한 전차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예찬했던 인간 이성이 데려온 곳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지옥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바르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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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닻’의 원리와 ‘흔들리며 배우는 진리’
닻은 배가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지만 흔들리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아니 도리어 흔들리게 두는 장치가 닻입니다. 흔들림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닻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감정이 출렁일 수 있고 의심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수 있습니다. 좋은 신앙이란 닻을 믿고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용기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바다 위의 폭풍'(피터르 판 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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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