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16장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옷차림 하나, 말투 몇 마디, 특정한 행동 몇 가지 등 그런 조각들만으로 타인이 나를 판단하고,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정의가 내려지는 경험 말입니다. 타인이 알고 있는 몇 개의 단서가 곧 나의 전체가 되어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서 나는 어느새 ‘그런 사람’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상황과 맥락은 지워지고 남은 것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단정적 평가뿐입니다. 때로는 나조차도 규정하기 어려운 나를 타인이 무슨 수로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대화 몇 번 해 보고, 몇 가지 경험을 가지고 “나 저 사람 알아”,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라고 평가합니다. 타인이 나의 하나를 보고 열을 평가하는 것은 ‘오해’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타인의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것은 ‘이해’라고 합니다.
“신앙은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고 말하는 대신, 열 번을 보고도 오해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그렇습니다. 우리는 겉을 보는 존재입니다. 겉만 보는 존재가 아니라, 겉을 보고 속을 헤아리려 드는 존재입니다. 행동에서 동기를 읽고, 말투에서 인격을 추측하고, 몇 가지 이력으로 인생 전체를 요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겉모습에 그렇게 집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인상, 과대과소평가, 고정관념, 편견 등 이 모든 평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타인의 하나만 보고 열을 평가하듯, 타인도 나의 하나만 보고 열을 평가한다는 것을 알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을 쓰고, SNS에 올리는 사진 몇 장, 프로필의 짧은 글귀 등 보이는 이미지 하나하나를 통제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은 나의 일부를 가지고 전부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단정 짓지 않으십니다.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를 보시고, 나의 중심을 아십니다.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분의 한 시야 안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신앙은 그런 시선 앞에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 속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고 말하는 대신, 열 번을 보고도 오해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SI9NjnBH2H8?si=twUwg6XvIFRyvu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