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사사기 18장
“전에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삿 18:14)
모든 사회에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각과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은 여성이 새벽 2시에 조깅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런 발상 자체가 여성 안전에 대한 무감각함이라며 비판하는 사회도 있습니다. 사회마다 마땅한 것이 다릅니다. 각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상식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 지파에게 ‘마땅함’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군인 600명을 이끌고 미가의 집으로 가서 우상을 탈취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마치 원래 그래도 되는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단 지파 내부에서는 도대체 어떤 가치관이 공유되고 있었기에 우상을 훔쳐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만 하더라도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결의했던 그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단 지파는 가나안 땅에 가장 늦게 자리를 잡은 지파였습니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쉽게 정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가나안 땅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동안, 가나안 땅에 살면서 우상 하나쯤 소유하는 것 정도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서서히 뿌리를 내렸을 것입니다. 결국, 우상 하나 모시고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어버렸고,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우상 숭배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고 맙니다.
마땅한 일이 처음부터 마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엔 못마땅했던 것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당연해지고, 당연해지면 도리어 이전에 마땅하던 것들이 못마땅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의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성공적 삶일까?’, ‘그게 진짜 행복이고 기쁨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이런 질문을 멈추는 순간, ‘원래 다들 저렇게 사는가 보다’ 하고 살게 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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