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마지막 남은 반사신경, 누구를 의지하시렵니까?

사무엘상 30장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
다윗과 그의 일행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불타버린 성읍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족들이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기습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울었습니다. 울 기력이 없어질 때까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염없이 우는 가운데 슬픔이 그만 방향을 잃고 맙니다. 분노로 변질된 슬픔이 그들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고, 그 분노는 고스란히 다윗을 향합니다.
슬픔과 분노 사이에는 논리적인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개연성이 있어야 확장되거나 옮겨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불과 같아서 탈 것만 있으면 옮겨 붙습니다. 그들만 가족을 잃었습니까? 다윗도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맹렬한 분노에는 희생제물이 필요했고 다윗이 희생양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돌을 들고 다윗에게 다가갔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전우들이 순식간에 돌변해 자신을 죽이려 드는 상황에서 다윗이 겪었을 다급함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는 모든 신경이 말라붙는 듯했을 것입니다. 당혹스러움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공포와 더불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그의 몸을 휘지 않았겠습니까? 뭔가를 해야겠는데 판단이 서지 않는 순간을 맞닥뜨린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사람이 다급하면 이성을 잃습니다.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다급함의 순간,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다급할 때 자기가 진짜 믿고 있는 것이 무의식의 외피를 뚫고 솟아오릅니다.
사울도 다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사무엘이 오기도 전에 자신이 제사를 집례해 버립니다. 이것이 사울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 중심의 변화입니다. 다급한 순간, 나를 움직이는 가장 깊고 본질적인 반응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머리에 아무리 가득 차 있어도 이성이 마비되는 동시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마지막 남은 반사신경, 다윗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WnL_IAh6PQI?si=C9bhQuwQLXIHqQ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