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깐묵상] 천재들의 비극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왕을 움직일 수 있는 자였습니다. 왕조차도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했고, 그 자신은 체스를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권한과 영향력이 얼마나 달콤하고 짜릿했을까요?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한 전능감 속에서, 그는 어느새 하나님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하 17장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짐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삼하 17:23)

아히도벨은 이스라엘 최고의 지략가였습니다. 그의 계략은 언제나 신의 한 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히도벨의 생각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다윗도, 압살롬도 그가 하는 말에는 늘 신중하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천부적’이라는 것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는 천재적이었고 독보적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앞서 계산하고 판단했으며, 그 계산과 판단이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의 마지막이 충격적입니다. 스스로 목을 맨 것입니다. 그의 명석한 두뇌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히도벨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계산이 끝나 있었습니다. 후새의 아이디어가 채택됨과 동시에 그는 압살롬의 패망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의 복귀는 시간 문제였고, 그다음엔 다윗을 배신한 자신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도 명확했습니다. 그가 압살롬 편에 붙어서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중대한 죄악이었는지를 아히도벨 스스로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명석했던 그가 다윗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을 지켜봐 왔다면 인간의 정치를 넘어선 하나님의 통치의 차원을 인지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조차도 자신의 지혜로 보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요? 다윗보다는 압살롬이 적합해 보였던 것입니다. 어느 순간, 그는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왕을 움직일 수 있는 자였습니다. 왕조차도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했고, 그 자신은 체스를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권한과 영향력이 얼마나 달콤하고 짜릿했을까요?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한 전능감 속에서, 그는 어느새 하나님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찬란한 지혜의 빛은 도리어 자기를 사르는 불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 이성의 최종적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너머를 신앙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3-24)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RGc7y2eHvmI?si=h4fRGH3O0SrHtCV2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