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교경전의 사서인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 중 <대학>, <중용>은 원전(原典)이 <예기(禮記)>다. 남송 시대 주희(朱熹), 즉 주자(朱子)가 이 두 부문을 전성지서(前聖之書), 즉 전대 성인의 저서로 여겨 <예기>에서 분리해 각각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먼저 <예기> 제42편을 원전(原典)으로 한 <대학>을 보자! 공자 자신이 원저자란 설이 있기도 했으나, 다음 유력한 저자로 증자(曾子‧B.C. 505년~B.C. 435년)가 부상했다. 이름이 삼(參)인 증자는 전국 시대의 유가 사상가로 공자의 곁을 끝까지 지킨 만년의 최연소 애제자다. 공자보다 46세 연하인 그는 공자 사후 유가의 강고한 일파를 형성하여 공자사상의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켰다. 그는 공자의 뛰어난 제자 열손가락 안에도 들 정도로 유력한 공자 계승자다.
曾子, 孔子의 직계 제자
앞서 <대학>의 원작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했는데, 주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경문(經文)은 증자가 공자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고 전문(傳文)은 증자의 뜻을 그 문하생들이 해설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문은 성인이 직접 언급한 진리, 전문은 성인에 버금가는 현인이 경문을 정리한 것이라는 의미다. 주자는 이처럼 사서(四書) 체제를 정립하면서 공자(<논어>)→증자(<대학>)→자사(<중용>)→맹자(<맹자>)의 상통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을 증자의 완벽한 저서라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증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다 1993년 후베이(湖北)성 곽점촌에서 발견된 전국(戰國) 말기의 초나라 죽간문서 <곽점초묘죽간(郭店楚墓竹簡)>의 문구를 해석할 결과, 공자의 손자인 공급(孔伋), 자사(子思, B.C. 483년?~B.C. 402년?)의 문하생들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나오면서 자사가 유력한 저자로 등장했다. 참고로 총13편의 <곽점초묘죽간>은 적지 않은 학술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분서갱유 등의 영향으로 인해 거의 유실되었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기존 문헌학사의 공백을 메워줌과 동시에 그동안의 학술적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실물 자료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증자는 <대학>의 저술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공자의 애제자인 증자의 직계 제자가 자사이기 때문에 결국 <대학>은 증자→자사→그의 문하생들로 이어지는 저술 체계를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서의 시대적 저작 시기도 <논어>-<중용>-<대학>-<맹자> 순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대학 기본 교양 소재 격인 <大學>
이제 <대학>의 주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대학>은 자기 수양을 완성하고 사회 질서를 이루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대학’(大學)은 통치자의 학문이라는 설과 인격자의 학문이라는 설로 나뉜다. 주자는 <대학>이 소학(小學)을 마치고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처음 배우는 개설서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학교의 기본 교양 교재와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은 유가의 주요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수양한 후에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즉 사회의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한 후에 이를 주변 사회로 넓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에 담아냈다.
여기서 경문에 기술된 삼강령을 살펴보자.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의 경문 제1장이다. 의역하면 “큰 배움의 근본이념은 첫째, 사람의 밝고 선한 천부적 인성을 밝혀 드러나게 함에 있고, 다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낡은 악습을 버리고 본연의 선성(善性)을 새롭게 발휘하게 함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사람이 더할 나위 없이 선한 경지에 이르러 머무르게 함에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인의 학문의 길과 교육의 목표가 삼강령이라고 할 수 있다.
팔조목(八條目)이란 삼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여덟 가지 작은 항목을 말한다. <대학> 전문(본문 격)의 내용을 토대로 팔조목을 살펴본다.
팔조목, 이치와 수신의 금과옥조
첫 번째는 ‘격물(格物)’이다. ‘사물을 바르게 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주자는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접하고 사물에 다가가야 한다고 했고, 오늘 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내일 또 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 날 홀연히 사물의 모든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치지(致知)’다. 치지란 앎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식하는 주체인 마음의 이치와 인식의 대상인 사물의 이치가 서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은 가능해진다. 인간에게는 사물의 이치를 인식하는 마음이 있고 사물에는 객관적 이치가 있기 때문에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가능해진다.
세 번째는 ‘성의(誠意)’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유지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독실하게 해서 덕을 쌓는 것이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정심(正心)’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사물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또한 마음은 몸을 이끄는 주인이다. 따라서 마음을 바르게 해야 바른 인식과 바른 행동이 가능해진다.
다섯 번째는 ‘수신(修身)’이다. 사람은 자신의 단점은 모르고 남의 단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수신은 자신의 단점을 알고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여섯 번째는 ‘제가(齊家)’다.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일은 수신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바르면 집안사람들도 바르게 된다.
일곱 번째는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이다. 집안을 잘 다스리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된다.
여덟 번째는 온 세상을 평안하게 만드는 ‘평천하(平天下)’다.
이렇게 보면 세상을 안정시키는 일은 위정자가 덕을 쌓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평온한 태평성대에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덕을 쌓아야 한다.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성의·정심은 수신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사물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사물에 직접 다가가서 경험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 끊임없이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유지하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마음을 반듯하게 가져야 한다.
<중용>, 유교의 철학개론서
이제 <중용>을 살펴보자. <중용>은 본시 <예기(禮記)>의 31편을 원전으로 유행하다가 송(宋)나라 이후 단행본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일찍이 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고, 한나라 이후에는 주해서가 나왔다.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頤)에 이르러 37장이 되었다가 주희(朱熹)가 다시 33장으로 가다듬어 독립된 경전으로 분리시켰다.
<중용>의 작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존재한다. <사기>에 근거해 자사가 저자라는 설이 한동안 힘을 받아 왔다. 그러다 청대에 고증학이 대두되면서 자사의 저작설에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진한(秦漢)시대의 불특정 인물에 의한 저작이라는 고증도 나오고 있고, 자사의 저본(底本)을 바탕으로 후세의 학자들이 상당기간 동안 가필해 완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든 <중용>의 자사 저작설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중용>을 흔히 유교의 철학개론서라 일컫는다. 이는 <중용>이 유교의 철학적 배경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장(首章) 첫머리에서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본질이 성(性), 즉 사람의 본성이요,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 즉 만사만물의 보편 법칙이며, 그 법칙을 닦아 널리 밝힘으로써 사름들이 따르게 하는 것이 교(敎), 즉 교화(敎化)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대목은 유교 철학의 출발점과 그 지향처를 제시하는 중요한 문구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자면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그 배움에는 길(道)이 있고 길은 바로 본성(本性)에 기반하고 있으며, 본성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갖추어진 것이라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저절로 갖추어진’ 본성을 유교에서는 맹자 이후 ‘순선(純善)’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송대에 와서 정립된 성리학은 이에 기초해 전개되고 있다.
전반부엔 中庸, 후반부엔 誠
이제 <중용>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전반부에서는 주로 중용 또는 중화사상에 관해 논하고, 후반부에서는 성(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中)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 것이고, 용(庸)이란 떳떳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희는 설명했고, 정이는 기울어지지 않는 것(不偏)을 중이라 하고 바꾸어지지 않는 것(不易)을 용이라 하였다.
한편 중화사상은 중용을 철학적 표현으로 달리 말한 것인데, 이 때의 중(中)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현되기 이전의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마음이 발해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일컫는다고 한다. 이러한 중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있게 되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는 것인데, 이는 우주 만물이 제 모습대로 운행되어 가는 것을 뜻한다.
성(誠)은 바로 우주 만물이 운행되는 원리이다. 그 원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통해 있다. 그래서 “성은 하늘의 도이고 성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성실한 것은 우주의 원리이고,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우주의 운행 원리인 성을 깨닫고 배우고 실천하는 데에서 인격이 완성되며, 결국에 가서는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서(四書) 중 또 다른 두 기둥인 <대학>과 <중용>의 저술에 사제지간인 증자와 자사가 관여했다는 것은 범상치 않게 기묘한 인연이 아닌가 하겠다.
[참조]강성률 著 푸른솔 刊 <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 2>
증자‧자사 著 박상수 譯 문예출판사 刊 <대학‧중용>
신정근 著 사계졀 刊 <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