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윤재석의 시선] 문구점 줄폐업을 바라보며…

손 편지와 엽서, 앨범 등의 아날로그 감성이 급격히 소멸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겨운 분위기가 피어났던 동네 문구점의 잇단 폐업을 보는 마음은…

얼마 전 USB와 스테이플러를 사기 위해 집 근처 문구점 모닝글로리에 들렀다. 그런데 점포 입구에 4월 30일 영업 마감 기념 ‘전 품목 30% 세일’ 공고를 붙여 놓은 것 아닌가! 필사용 노트나 볼펜 심 등을 사기 위해 이따금 들러서 만년필 구경도 하고, 다른 문구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폐업한다니 아쉬워 중년쯤 되어 보이는 주인에게 연유를 물었다.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잖아요. 학기 중인데도 학생들 내왕이 거의 없어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단 가게를 접고 다른 업종을 구상할 계획이라 했다.

학교 근처 문구점도 폐점

그러고 보니 동네 초등학교 근처 유일한 문구점도 개업 6개월만인 이달 중순 짐을 싸, ‘임대 안내’ 푯말만 덩그러니 붙어있다. 정확한 통계를 접할 수 없어 문구점 쇠퇴의 심각성을 수치(數値)로 가늠할 수 없지만, 내 주위의 두 사례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우선 전 사회에 걸친 디지털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태블릿, 랩톱, 클라우드 서비스 등 디지털 기기 및 소프트웨어가 대세를 차지함으로써, 아날로그 문구인 공책, 연필, 파일 등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교 교육 방식이 온라인 수업과 디지털 교과서 확산으로 문구 사용 빈도가 줄어든 것, 직장 업무가 재택근무, 전자결재 등의 일반화로 문서 출력이나 필기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 역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알파(α및 베타(β세대 등장으로 가속화

2010년 이후 출생한 이른바 ‘알파(α) 세대’의 등장으로 문구류 수요가 더욱 심각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 기기가 몸에 배어 종이 기반의 문구류 소요가 거의 없다. 특히 유튜브, 디지털 드로잉, 온라인 노트 등 디지털 콘텐츠 생산과 소비에 익숙해 자연히 문구점과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

초대형 프랜차이즈, 저렴한 문구로 시장 공략 중인 다이소, 쇼핑몰, 쿠팡 등 가격 경쟁력을 갖춘 존재들이 동네 문구점을 폐업으로 내몰고 있는 이유도 있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할 ‘베타(β) 세대’(2025~2039년 출생)가 사회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때가 되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이치다.

손 편지와 엽서, 앨범 등의 아날로그 감성이 급격히 소멸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겨운 분위기가 피어났던 동네 문구점의 잇단 폐업을 보면서 드는 서글픈 소회(所懷)다.

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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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의견

  1. 다이소에서 품질좋고 가격이 저렴한 필기구들을 사면서 선생님께서 느끼신 것과 비슷한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많은 소규모 문구점들이 폐업하면서
    그나마 남은 시장은 대형 체인들이 점유하게 되는 현대의 모습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많은 나라에서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라는 생각입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우선 가치로 작동되는 시장경제 사회에서는
    비단 문구류 뿐만이 아니고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도 대형 조직과 체인 위주의 사업방식이 제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만
    원시인류가 도태되고 신 인류가 다음 세대를 맞이했듯이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적응되어야 다음 시대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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