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기사는 아시아엔 다국어판 플랫폼을 통해 공유됩니다.
[아시아엔=레오 니로샤 다르샨, 스리랑카 익스프레스뉴스 에디터] 2017년, 심각한 부채 위기에 시달리던 스리랑카가 전략적 요충지인 함반토타 항만의 운영권을 중국 국유기업에 99년 장기임대 형태로 넘겼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스리랑카의 정치권은 중국 투자를 둘러싼 ‘부채 함정’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경제 실패와 외국과의 불공정 계약을 발판 삼아 집권한 국민인민동맹(NPP) 정부는 그들이 비판하던 대중(對中) 자본 의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갈등은 ‘부채 함정’ 담론이나 지정학적 경쟁 구도를 넘어선다. 스리랑카는 취약한 경제 구조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경제·정치적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2024년 9월 취임한 NPP의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임 정부가 체결한 외국인 투자, 특히 중국의 인프라 투자와 연계된 협약들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나섰다. 검토 대상에는 콜롬보 항만도시와 함반토타 등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세제 혜택, 규제 유예, 에너지 협약, 거버넌스 구조 등이 포함됐다.
지난 2022년의 경제 붕괴는 국민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스리랑카 국민 대다수는 외국 자본이 투입된 인프라를 부정부패와 국가 주권 침해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다. 규모와 가시성이 더욱 두드러진 중국과의 프로젝트들은 이 같은 불만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현실은 냉혹하다. 외채 부담은 여전히 크고, 외환 보유고는 불안정하며, 투자 유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외국 자본 유치가 절실한 이유다.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자금을 댈 의지와 능력을 갖춘 국가도 중국을 제외하면 몇 안 된다.
이러한 딜레마는 디사나야케 정부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존 계약의 재검토를 미뤄두고 2025년 1월 중국 시노펙시노펙(중국 국유 석유화학기업)의 함반토타 정유공장 건설 협약을 추진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다. 투자 규모는 37억 달러(약 5조6,310억원)로, 스리랑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 중 하나다.
주권 훼손·종속의 상징으로 전락한 함반토타
스리랑카의 그 어떤 프로젝트도 함반토타 국제항만이 지닌 상징성에 비할 바 못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임대한 운영권이 계획적인 부채 함정인지, 아니면 국내 재정 실정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 왔다. 이와는 별개로 스리랑카 정치권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거셌다. 함반토타 항은 주권 훼손과 전략적 종속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중국의 ‘부채 함정'(debt trap)이란,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상환하기 어려운 조건의 대규모 자금을 빌려준 뒤, 채무국이 상환에 실패하면 항만·공항 등 전략적 인프라 자산을 담보로 가져가는 방식을 가리킨다. 함반토타 항만 사례는 ‘부채 함정’ 논란의 대표적 사례로 인용된다. – 편집자
전임 정부의 정치적 부채를 고스란히 떠오른 디사나야케 정부는 이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 내부적으로는 중국이 관리하는 전략 자산에 대한 더 엄격한 감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자본이 투입된 경제특구 콜롬보 항만도시는 중국의 독자적인 규제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나, 이 곳에 대한 세제 혜택 재검토 논의도 재정긴축 시기에 그 부담을 짊어졌던 대중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IMF 구조조정 이후 콜롬보 당국은 항만도시 내 인센티브 구조를 강화하고 일부 세제 면제를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혜택을 축소하면 스리랑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다. 역설적으로 세제 혜택 재검토는 경제난을 둘러싼 여러 뇌관들과 맞닿을 가능성이 높다.
스리랑카 경제 회복의 중심축은 인도양의 해상·금융 허브 구축으로, 중국이 건설하는 인프라가 핵심 토대다. 역대 정부들이 대선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던 이유다. 선거 당시에는 반외세 정서에 기대어 표를 모으지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선 해외 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단절이 아닌 재조정 원하는 스리랑카, 그러나…
스리랑카와 중국의 관계는 지정학, 특히 중국의 인도양 영향력 확대로 풀이된다. 함반토타항과 세계 주요 항로의 연결성은 인도의 미국의 안보 불안을 자극한다. 그러나 중국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군사적 존재감이 아닌, 스리랑카 실물 경제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인 의존에서 비롯된다.
중국은 물류·에너지·건설·장기 개발 금융 등 스리랑카 경제의 여러 부문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산업단지 확장, 신규 에너지 프로젝트 등에 여전히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스리랑카가 원하는 것은 중국과의 단절이 아닌 재조정이다. 문제는 중국이 장기적으로 전략적 이익을 확보한 기존 협약을 근본적으로 바꿀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스리랑카 입장에선 미세한 균형점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자본 유입을 지속시키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외세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그런 균형말이다. 이 같은 딜레마는 자본이 취약한 약소국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 중 하나인 스리랑카에 있어 이 논쟁은 항만이나 차관을 넘어서, ‘자국 경제의 키를 스스로 쥘 수 있는가’ 라는 주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시아엔 영어판: The Dilemma in Colombo: Sri Lanka’s New Government Faces the Reality of Chinese Capital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