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폐버스를 청년주택으로? 탑골공원 술자리보다 못한 정치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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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종로 탑골공원을 지나 낙원상가 뒷골목에는 늙은 음악인들의 애환이 서린 인력시장이 있었다. 비록 연주인은 아니었지만, 송해거리에 허름하게 자리 잡은 국밥집에 앉아 선지해장국에 돼지머릿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들이켜노라면 묘한 재미가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얼큰하게 약주를 걸친 노인네들의 대화를 엿듣는 맛이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독신자들한테 ‘외로움 세금’을 왕창 걷어서 신혼부부한테 몰아주면 단박에 해결돼!” “서울 시내 주차장이 모자라? 한강에 거대한 스티로폼을 띄워서 부유식 주차장을 만들면 되잖아!” “전기가 부족하면 교도소 죄수들 방마다 자전거 발전기를 달아서 하루 종일 페달을 밟게 해!” 소주 기운이 올랐을 때는 “어, 순간 꽤 기발한데?” 싶어 무릎을 치다가도, 다음 날 술이 깨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어지간히 취했었구나” 하며 피식 웃고 마는 전형적인 술자리 헛소리들이다.

딱 이 수준이다. 국밥집 취객들이 얼큰하게 취해 내뱉는 안주거리 수준의 상상력이 작금의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내놓는 청년 주거정책의 현주소라니 기가 막힌다. 3선 중진이자 장관까지 지낸 민주당 황희 의원이 내놓은 ‘버스 하우스’ 구상을 보라.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에게 1만 세대나 공급하겠다는 이 기막힌 아이디어는 탑골공원 취객의 허풍이 아니라 일국의 집권여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공식 제안이었다. 네덜란드의 보트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5000억원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다는 식의 설명까지 붙었다. 그 얄팍한 대담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상하수도 배관은 어떻게 연결할 것이며, 얇디얇은 철판 외벽으로 한국의 혹한과 혹서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냉난방과 단열은 어떻게 해결하고, 화재와 방재 대책은 또 어쩔 것인가. 뻥 뚫린 창문 너머로 여성 청년들의 사생활과 치안은 도대체 누가 담보한단 말인가. 버스는 애초부터 사람을 태워 이동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지, 사람이 밤낮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은 집이 아니다.

“차라리 고시원이 낫다”는 대학생들의 절규는 배부른 투정이 아니다. 생존을 향한 상식적인 반문이다. 도대체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폐차장으로 가야 할 깡통 버스를 ‘청년 주택’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덮어 내밀 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겨우 몸 하나 뉠 수 있는 철제 상자가 아니다. 잠을 자고, 씻고, 밥을 먹고, 공부하고, 쉬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공간이다. 집은 사람을 수용하는 용기가 아니라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여론이 무섭게 들끓자 민주당은 황급히 당의 공식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해당 의원은 “순수한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는 취지로 물러서며 게시글도 지웠다. 청년들의 주거를 담보로 일단 한번 던져보고 반응이 나쁘면 물러서는 전형적인 ‘간 보기’로 비칠 만하다. 간은 제발 집에서 찌개와 국을 끓일 때나 보시라. 어제저녁 들이켜신 양주가 아직 덜 깬 것이라면 엄한 청년들 속 뒤집어놓지 말고, 당장 시원한 냉수나 한 사발 들이켜고 본인 속부터 차리는 게 순서 아닌가.

정책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정치인의 권리다. 때로는 엉뚱한 발상에서 혁신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정책 사이에는 현실이라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 더구나 주거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 사생활과 존엄이 달린 문제다. 정책을 내놓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그 버스에서 한겨울과 한여름을 보내는 청년의 하루를 상상해봤다면 이런 제안이 그렇게 쉽게 나왔을까.

아주 간단한 질문도 있다.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이 버스에서 몇 년 살아보라고 권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면 남의 자식에게도 권해서는 안 된다.

한 번 뱉어낸 얄팍한 인식의 밑천은 삭제 버튼을 누른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정책 제안에는 그 정책을 바라보는 사람의 철학과 인식이 묻어난다. 특히 힘없는 사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폐버스를 집에 빗대는 이 기괴하고 오만한 소꿉장난 앞에서,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은 오늘도 씁쓸한 깡소주를 들이켤 수밖에 없다.

탑골공원 뒷골목 국밥집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한바탕 웃고 흘려보낼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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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음악감독, '낙원전파사' 프로듀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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