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계

[윤재석의 시선] 쿠바 속 미국 ‘관타나모’, 아름다운 이름 뒤의 기형적인 역사

관타나모

쿠바 당국이 300대가 넘는 드론을 확보해 쿠바 섬 남동쪽에 위치한 관타나모 미군기지와 미군 전함, 그리고 미 본토 플로리다반도 남단의 키웨스트 등을 공격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가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쿠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뒤 다음 타깃으로 삼겠다고 밝힌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지구촌의 주목을 끌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 곳은 관타나모 기지다. ‘쿠바 속의 미국’이라고 불리는 이 기지는 태생부터 기형적인 운명을 안고 출발했다.

미 해군 관할로 운영되는 이 기지는 서울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115㎢ 규모다.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이 점령한 이후,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 시절 연간 4000달러 상당의 금화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기지를 임차했다. 이어 1934년 영구 임차협정이 체결되면서 관타나모는 미군 해외기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지 중 하나가 됐다. 이 기지는 국가 간 불평등 계약의 상징이기도 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는 집권 직후 미국에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양국 합의 없이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조항을 내세워 철수를 거부했다. 카스트로는 기지 주변에 지뢰를 매설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1964년에는 기지에 대한 물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임차료는 지금도 연간 4085달러 수준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085달러짜리 수표를 쿠바 정부에 보내고 있지만, 쿠바 당국은 이를 현금화하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주연의 <어 퓨 굿 맨> 포스터. 사법정의와 애국주의, 시대변화와 관습의 미묘한 흐름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이곳은 1962년 미·소 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 해병 2개 사단이 증파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으며,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가 작사한 노래 ‘관타나메라(관타나모의 여인)’와 톰 크루즈, 잭 니컬슨,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어 퓨 굿 맨>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관타나모를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기지 내 포로수용소였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과정에서 체포한 알카에다 조직원과 탈레반 전사 등을 불법 전투원으로 규정해 ‘캠프 엑스레이’ 등에 수감했다. 수감자는 한때 500명을 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는 수감자들에 대한 두건 씌우기, 수면 박탈 등 심리적·육체적 학대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06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도 미국 정부에 강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카리브해의 악명 높은 허리케인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 관타나모. 원주민 타이노어로 ‘강 사이의 땅’ 또는 ‘강이 많은 곳’을 뜻하는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이곳은 냉전과 패권정치, 그리고 인권 논란이 교차하는 비극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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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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