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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의 시선] 프란치스코 교황…21세기의 예수, 주님 품에 안기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를 일기로 선종해 주님 품에 안겼다.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지시간 21일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하고 “그는 전 생애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고 덧붙였다.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아르헨티나 출신의 그는, 2013년 3월 열린 ‘콘클라베’에서 보수파와 개혁파 추기경들의 지지를 두루 얻어,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로마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자 1300년 만에 비유럽(신대륙) 지역에서 배출된 첫 교황이며, ‘빈자의 성인’으로 알려진 13세기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교황 명으로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가 누구인가? 그는 12세기 이탈리아의 탁발 수도사로서 아시시의 언덕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동냥하며, 이따금 옆 마을의 수도원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한센병과 천연두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는 데도 주력했는데, 이들이 모여 사는 집단촌을 종종 방문해 환자 한 명 한 명 정성껏 간호하기도 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음유시인(Il trovatore di Dio)’이란 별호가 붙은 수도자이자 신학자이자 시인인 프란치스코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처럼 평소 검박하고 겸손한 행보로 지구촌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소형차를 즐겨 이용하고, 철제 십자가를 착용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실천함으로서 가톨릭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때문에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를 추앙하는 이가 많았다. 심지어 개신교인들 가운데도 그의 숭엄(崇嚴)에 찬사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의 등장으로 가톨릭이 오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소리도 들리곤 했다.

그의 그러한 행보는 주교와 추기경으로 사목하던 시절부터 일관된 것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절 그는 빈민촌 사목에 헌신했으며, 마약과 폭력이 만연한 지역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몸소 실천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시 특히 분쟁지역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힘썼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 등 국제 문제에 대해 평화를 촉구했다. 또한 기후변화 대처와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그의 모든 행보가 교계의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개혁을 추진하며 가톨릭 내 보수 진영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동성 커플 축복 허용과 같은 결정은 가톨릭 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사안마다 한국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것도 기억에 남는 그의 행보다.

교황청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 또한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평생을 가난한 자와 힘 없는 자, 소외된 자들 편에 서서 섬겨온 그의 성자적 모습은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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