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깐묵상] 비극을 통해 알게 된 간극

힘으로 시작된 전쟁은 언제나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 끝이 진짜 끝일까요? 원한과 복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은혜를 알면 쉽게 다짐하고 행동하기보다 그저 무릎을 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수준을 보여 줍니다. 갈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간이 고작 한다는 것이 희생양을 물색해서 십자가에 매다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바로 그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사무엘하 2장

“그가 물러가기를 거절하매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의 배를 찌르니 창이 그의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이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삼하 2:23)

아브넬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아사헬이 멈추지 않습니다. 아브넬은 결국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아사헬은 아브넬의 창에 찔려 죽고 맙니다. 힘으로 시작된 전쟁은 언제나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 끝이 진짜 끝일까요? 원한과 복수의 시작입니다. 나중에는 아사헬의 형 요압이 아브넬을 죽입니다. 이처럼 힘으로는 어떤 갈등도 끝내지 못합니다.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거나 갈등을 잠시 눌러 둘 뿐입니다.

그러면 사랑, 인내, 관용, 양보 등과 같은 태도가 갈등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갈등의 악순환을 끊어 보고자 먼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한 발 물러서는 용기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상대의 선을 악용하는 사람이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무장 해제했던 사람도 다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악순환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도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죽어야 하고, 누군가는 죽여야 하는 비극을 우리는 구약의 역사서를 읽는 내내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윗 왕조가 세워지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해서 그 과정의 수많은 비극들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정당화’보다는 ‘정직함’으로 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는 사람들조차 권력, 탐욕, 복수심, 이기심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인간의 수준이 딱 거기까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 취지, 명분을 가진 일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수준을 보여 줍니다. 갈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간이 고작 한다는 것이 희생양을 물색해서 십자가에 매다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바로 그 희생양이 되기를 자처하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수준을 ‘따라야 할 삶의 모범’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따르고자 다짐하기에 앞서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수준과 우리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은혜’를 알게 됩니다. 은혜를 알면 쉽게 다짐하고 행동하기보다 그저 무릎을 꿇습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NVyOWHk69Xc?si=j1oblTZhx_LqvbbH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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