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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
가시나무는 자신의 그늘, 즉 자기의 수하에 들어오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자기편에 서지 않는 나무들은 척결과 청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중략) 가시나무와 같은 권력적 방법으로는 결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증오와 갈등, 억압의 악순환을 부추길 뿐입니다. <사진 가시나무 국민일보 DB>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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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석문섭 칼럼]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 ‘큰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지극히 크신 분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이라는 가장 위대한 대우를 받았고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대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작은 인정에 연연할 까닭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벌써 배가 부른데 무엇이 더 고플까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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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문섭 칼럼] 레전드의 뒷모습
45년 전, 두 사람은 가나안 정탐 작전에서 만나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같이 넘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함께 꾸며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역사의 전면에서 갈렙은 역사의 이면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었을까요? 주 안에서, 주를 위해 이렇게 동역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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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숙한 신앙이란…”나의 부족함으로 빚어진 상황에 정직하게 직면하는 용기”
누구나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변명하거나 상대방과 나의 ‘과실률’을 따지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의 얄팍한 본성입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라는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 슬쩍 떠넘기고 싶은 심리가 이 기도에 스며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숙한 신앙이란 핑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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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선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
군대에 들어가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가만히 있는 법입니다. 뛰기 전에 ‘차렷’을 배우고 총을 쏘기 전에 바둑알을 총열에 올려두고 떨어뜨리지 않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불안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재촉하는 욕망과 싸워서 승리한 상태가 ‘멈춤’입니다. 쉴 새 없이 들끓는 조바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가만히 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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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성경에서 찾은 가장 오래된 미래
성경은 최소한의 생존 수단은 채권 추심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시합니다(신 24:6). 아무리 채권자라도 채무자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신 24:11). 또한 가난한 자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주어 그가 차가운 밤을 견딜 수 있게 했으며(신 24:13), 장애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레 19:14). 심지어 누군가 옥상에서 떨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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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리’를 가장한 ‘편리’를 좇고 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요 절기마다 제물이나 십일조로 드릴 동물을 데리고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먼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성전까지 몇 주씩 걸려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을 데리고 긴 시간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데리고’ 간다기보다 ‘모시고’ 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의 동물의 컨디션을 성전에 도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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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석문섭 칼럼] ‘계약’의 파기, ‘언약’의 갱신
하나님은 우리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조차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언약적 사랑(Hesed)으로 대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사장님처럼 여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십계를 전달받은 모세’ 1659년 렘브란트 작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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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변치 않는 초심, 흔들리지 않는 중심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머물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세상의 얄팍한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돈 좀 벌었다고 변심하지 않습니다. 출세했다고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고, 인정받았다고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강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상대가 약하다고 무례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내게 족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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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적’과 ‘기준’, 그리고 ‘찐 신앙’
우리는 뜨거운 눈물이나 가슴 벅찬 감동에서 신앙의 정점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익숙한 사람과 밥 먹는 자리에서, 화장실에 남긴 뒷모습에서 드러나는 질서의 흔적과도 같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단단하게 잡혀 중심과 그 질서에 대한 것 말입니다. 사진은 홍해를 가르는 모세 *잠깐묵상 | 민수기 36장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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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석문섭 칼럼] 목사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세상 물정이 아니라 영적 깊이다”
아무리 애써도 목사가 교회 밖 세상을 일반 성도들만큼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직종과 분야가 다르면 서로의 세계를 잘 모른다. 자산운용사와 소설가가 서로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목사는 오죽하겠는가? ‘이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도들의 현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어설프게 설교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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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고라 자손의 인생역전…반역자 집안에서 루터 종교개혁의 씨앗으로
고라의 자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보통 이런 가문의 후손은 ‘반역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가 이마에 새겨진 채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태생적 운명을 자책하며 살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라 자손은 정반대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 문지기로, 무엇보다 ‘찬양’에 가장 앞장서는 자들로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합니다. 시편에는 ‘고라 자손의 시’가 무려 열한 편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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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문섭 칼럼] 상대가 내 진심을 믿어주지 않을 땐..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나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은 몹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내 진심을 애써 증명해 보이려다가 처음의 진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한 감정만이 남곤 합니다. 상대가 나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멀리 긴 시간을 돌아가는 선택, 이 여유는 나의 진심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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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각생들을 위한 식탁
십자가는 1등으로 도착한 모범생들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자, 죄의 냄새가 나는 자,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를 위해 하나님이 작정하고 차리신 식탁이자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베푸신 은혜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라는 탕자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원한 ‘두 번째 유월절’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자들에게, 자격이 없어 쭈뼛거리는 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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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공지능 광야’ 앞에 선 교회와 3500년 전의 ‘거룩한 기동성’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특정 장소와 건물에 매여 있는 종교인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성전 제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AD 70년,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며 성전 제사의 종결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세 기독교가 다시 그 돌을 쌓아 올리고는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견고한 제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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