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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변치 않는 초심, 흔들리지 않는 중심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머물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세상의 얄팍한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돈 좀 벌었다고 변심하지 않습니다. 출세했다고 초심을 잃지 않습니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고, 인정받았다고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상대가 강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상대가 약하다고 무례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내게 족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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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적’과 ‘기준’, 그리고 ‘찐 신앙’
우리는 뜨거운 눈물이나 가슴 벅찬 감동에서 신앙의 정점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익숙한 사람과 밥 먹는 자리에서, 화장실에 남긴 뒷모습에서 드러나는 질서의 흔적과도 같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단단하게 잡혀 중심과 그 질서에 대한 것 말입니다. 사진은 홍해를 가르는 모세 *잠깐묵상 | 민수기 36장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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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석문섭 칼럼] 목사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세상 물정이 아니라 영적 깊이다”
아무리 애써도 목사가 교회 밖 세상을 일반 성도들만큼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직종과 분야가 다르면 서로의 세계를 잘 모른다. 자산운용사와 소설가가 서로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목사는 오죽하겠는가? ‘이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도들의 현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어설프게 설교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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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고라 자손의 인생역전…반역자 집안에서 루터 종교개혁의 씨앗으로
고라의 자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보통 이런 가문의 후손은 ‘반역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가 이마에 새겨진 채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태생적 운명을 자책하며 살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라 자손은 정반대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 문지기로, 무엇보다 ‘찬양’에 가장 앞장서는 자들로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합니다. 시편에는 ‘고라 자손의 시’가 무려 열한 편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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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문섭 칼럼] 상대가 내 진심을 믿어주지 않을 땐..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나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은 몹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내 진심을 애써 증명해 보이려다가 처음의 진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한 감정만이 남곤 합니다. 상대가 나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멀리 긴 시간을 돌아가는 선택, 이 여유는 나의 진심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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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각생들을 위한 식탁
십자가는 1등으로 도착한 모범생들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자, 죄의 냄새가 나는 자,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를 위해 하나님이 작정하고 차리신 식탁이자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베푸신 은혜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라는 탕자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원한 ‘두 번째 유월절’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자들에게, 자격이 없어 쭈뼛거리는 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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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공지능 광야’ 앞에 선 교회와 3500년 전의 ‘거룩한 기동성’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특정 장소와 건물에 매여 있는 종교인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성전 제사가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AD 70년,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며 성전 제사의 종결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세 기독교가 다시 그 돌을 쌓아 올리고는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견고한 제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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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가장 거룩한 곳, 가장 아름다운 동행
대제사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아버지의 손을 한 번 더 잡았을 것입니다. 죽은 뒤의 화려한 장례보다 살아생전에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말입니다.-본문에서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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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모 파베르’의 구원
오늘날 우리는 과거처럼 동물의 피를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피 빨아 먹는다’고 표현할 수 있는 행위들이 여전히 만연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누군가의 인생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기술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것과 정반대의 방식입니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피를 흘리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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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궁극적인 힘
광야란 미리 안다고 더 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알고 가는 길이 아니라 믿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미래를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궁극적인 힘은 정보가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란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안정감이고, 정보의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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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안식’이 필요한 진짜 이유
하나님은 일이 우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식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주함에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노예는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지만, 자녀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습니다.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의 일을 노예처럼 감당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진 이영준 독자> 안식은 육체의 피로를 회복하는 시간을 넘어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 주제 파악의 시간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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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경이 말하는 능력…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무리 선한 제도를 만든다 한들 그걸 악용하는 이들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소수 때문에 공동체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법과 원칙의 촘촘한 구조보다 그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인 사람의 됨됨이, 즉 ‘인격의 온전함’에 더욱 주목합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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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산책] 인간을 증명하는 힘, AI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간지능의 역사> 표지 AI 시대,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2026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로 ‘인간 증명’이 언급된다.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가치가 더욱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간의 고유한 성격이나 능력을 말할 때, 종종 AI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AI를 활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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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문섭 칼럼] 상승 욕구와 인정 욕구
파라오와 노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출 11:5) 왕과 몸종 그리고 가축. 이 셋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같을 리가 없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이 구절은 고대 이집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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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살리는 말’…겉만 번지르르한 백 마디보다 뼈 아픈 한마디
축복은 말에 있지 않고 앎에 있습니다. 야곱은 누구보다 아들들을 잘 알았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독설 같은 한마디조차 그들에게는 분량에 맞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다 잘될 거야”라는 위로는 축복이 아니라 무책임한 방임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말아라”는 독설이 축복일 수 있습니다.-본문에서. 사진은 훈민정음 창세기 49장 “이들은 이스라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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