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 사람

    가장 거룩한 곳, 가장 아름다운 동행

    대제사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아버지의 손을 한 번 더 잡았을 것입니다. 죽은 뒤의 화려한 장례보다 살아생전에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말입니다.-본문에서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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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호모 파베르’의 구원

    오늘날 우리는 과거처럼 동물의 피를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피 빨아 먹는다’고 표현할 수 있는 행위들이 여전히 만연합니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누군가의 인생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기술은 날로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것과 정반대의 방식입니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피를 흘리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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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궁극적인 힘

    광야란 미리 안다고 더 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알고 가는 길이 아니라 믿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미래를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궁극적인 힘은 정보가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이란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안정감이고, 정보의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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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안식’이 필요한 진짜 이유

    하나님은 일이 우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식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분주함에 감동하지 않으십니다. 노예는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지만, 자녀는 존재만으로 사랑받습니다.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의 일을 노예처럼 감당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진 이영준 독자> 안식은 육체의 피로를 회복하는 시간을 넘어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 주제 파악의 시간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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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성경이 말하는 능력…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무리 선한 제도를 만든다 한들 그걸 악용하는 이들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소수 때문에 공동체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법과 원칙의 촘촘한 구조보다 그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인 사람의 됨됨이, 즉 ‘인격의 온전함’에 더욱 주목합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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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책산책] 인간을 증명하는 힘, AI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간지능의 역사> 표지 AI 시대,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2026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로 ‘인간 증명’이 언급된다.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가치가 더욱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간의 고유한 성격이나 능력을 말할 때, 종종 AI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AI를 활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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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석문섭 칼럼] 상승 욕구와 인정 욕구

    파라오와 노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출 11:5) 왕과 몸종 그리고 가축. 이 셋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같을 리가 없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이 구절은 고대 이집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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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살리는 말’…겉만 번지르르한 백 마디보다 뼈 아픈 한마디

    축복은 말에 있지 않고 앎에 있습니다. 야곱은 누구보다 아들들을 잘 알았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독설 같은 한마디조차 그들에게는 분량에 맞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다 잘될 거야”라는 위로는 축복이 아니라 무책임한 방임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말아라”는 독설이 축복일 수 있습니다.-본문에서. 사진은 훈민정음 창세기 49장 “이들은 이스라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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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진짜 은혜는 연출이 필요 없습니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의 ‘요셉과 야곱의 해후'(Joseph Meets Jacob) *잠깐묵상 | 창세기 46장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창 46:29) 22년 만의 부자 상봉이라는 극적인 장면치고는 서술이 너무 건조합니다. 만약 현대의 영화감독이 이 장면을 연출했다면 어땠을까요? 클라이맥스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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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에서와 야곱의 화해’…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시간조차 일하시는 하나님

    피터 파울 루벤스, ‘야곱과 에서의 화해’ *잠깐묵상 | 창세기 33장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4) 20년 만의 재회입니다. 형과 동생은 한 번도 건너보지 못한 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20년 전, 동생은 형의 축복을 가로채 야반도주했고 형은 동생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각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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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속일 때는 몰랐는데 속아보니 알게 되는 것들

    하나님은 종종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으로 우리를 밀어넣으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라반 밑에서 보낸 2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20년의 세월 동안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동생이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 인생에는 다양한 강도, 다양한 종류의 라반이 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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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보상의 선례, 놀부의 딜레마

    놀부전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창세기 18:2) 길에 서 있는 나그네를 발견한 아브라함은 지체 없이 달려가 그들을 영접하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습니다. 계산 없는 환대 끝에 아브라함은 사라의 임신 소식도 듣고 소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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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석문섭 칼럼] 글은 독자의 것, 기쁨으로 쓰고 하나님께 맡기다

    석문섭 이미지 나는 이 일이 즐겁다. 성경의 빼곡한 글자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말이다. ‘오다 주웠다’는 말처럼, 성경을 읽는 길에 줍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는 자꾸 눈길이 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시선이 빼앗길 정도로 특별한 것이다. 마치 유치원 다녀온 아이의 가방 속에 있는 잡동사니들처럼. 유치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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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내 존재를 기뻐해 주는 사람 곁에서 비로소 숨을 쉬다

    ‘돌아온 탕아’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8-1682) 작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상) 나는 왜 ‘없지’ 않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원래 없어도 되는 존재였습니다. 굳이 이 땅에 있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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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석문섭의 기울임] 큰 소리에 묻힌 작은 목소리들

    한목소리라는 게 존재할까? 큰 목소리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자연에는, 세상에는 작지만 무수한 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은 큰 소리다. 어떤 진영에서, 집단에서, 조직에서, 사회에서 하나의 소리가 들릴 때, 그건 한목소리이기 전에 큰 목소리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큰 소리 아래 묻혀버린 작은 소리들이 있다는 거. 오늘날 우리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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