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사는 세상을 잘 모른다. 성도들이 생업의 현장에서 무슨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전쟁같이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설교 시간에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세상 물정 모르는 현실 감각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성도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본질이 과연 목사가 ‘이 세상’을 잘 모르는 데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뿌리는 다른 곳에 있다. 목사가 세상을 몰라서가 아니다. 목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진짜 세상’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 세상은 바로 ‘성경 속에 담긴 세계’다.
목사는 ‘그 세상’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 들려주는 사람이다. 성경 속 세계의 질서와 가치, ‘그 세상’의 작동 방식을 ‘이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 목사가 하는 일이다. 만약 목사가 성경이 말하는 영적 세계의 깊이를 정성스럽게 길어 올려 성도들의 갈증을 채워준다면 어떨까? 성도들은 그것조차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느낄까? 목회자가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것을 문제 삼을까?
성도들이 내뱉는 “우리 목사님이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말은 일종의 신음이다. ‘그 세상’을 맛보지 못해서 생긴 영적 갈증의 표출이다.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하늘의 양식을 기대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때, 성도들은 목사의 몰지각함에 눈을 돌린다. 성경 속 세계를 들려주고 보여주지 못한다면, 세상의 상식이나 예의범절, 최소한의 현실 감각이라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결여된 모습에서 깊은 한심함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 물정에 밝고 현실 감각이 탁월한 목사는 어떨까? ‘그 세상’을 모른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목사에게서 세속적 냄새가 난다면 성도들은 얼마 못 가 싫증을 느끼지 않을까?
사실 나는 목사들이 세상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뉴스를 장식하는 목사들의 추문을 보면, 그것이 세상을 몰라서 발생한 일일까 싶다. 오히려 세상을 너무 잘 안다. 횡령, 배임, 불륜, 세습, 정치질…. 평생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온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돈의 맛을 잘 알고, 권력의 생리를 꿰뚫고 있으며,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에 능통할까? 세상을 고스란히 베껴놓고 성경 구절이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상 전문가의 모습이다.
때로는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상 같기도 하다. 부목사를 종 대하듯 하는 담임목사들이 있다. 지방에 출타했다가 운전하기 피곤하다며 KTX로 올라와서는 부목사에게 “○○역에 가서 차 가져올 것”이라고 문자 한 통 보내면, 부목사는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도 모르는 담임목사의 차를 찾아 끌고 올라와야 한다. 목사의 아내들은 남편이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교회로부터 받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슴속에서 사직서를 찢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목사들이 경험하는 ‘그들의 세상’이며 ‘직장 생활’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세상’을 알고 경험하고 맛보기에는 오늘날의 교회가 너무 세상을 닮았다.
목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세상’의 경이로움이다. 교회는 ‘그 세상’의 샘플이어야 한다.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아무리 잘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목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 이는 “목사가 현실을 모른다”는 말보다 더 비참한 소리다.
솔직히 아무리 애써도 목사가 교회 밖 세상을 일반 성도들만큼 알기는 어렵다.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도 직종과 분야가 다르면 서로의 세계를 잘 모른다. 자산운용사와 소설가가 서로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목사는 오죽하겠는가?
‘이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도들의 현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어설프게 설교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면 된다. 대신 목사만이 들려줄 수 있는 ‘그 세상’ 이야기를 충실히 전하면 된다. 성도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 세상’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다면,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목사의 ‘잘 모름’조차 너그럽게 품으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동역자로 설 준비가 되어 있다.
같이 일하면 된다. 함께. 각자가 더 잘 아는 것으로, 더 잘하는 것으로 서로를 섬기면 된다. 그렇게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