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기준’, 그리고 ‘찐 신앙’

*잠깐묵상 | 민수기 36장
“이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례니라”(민 36:13)
민수기 마지막 장을 읽다 보면 ‘이게 끝인가?’ 싶습니다. 40년 여정의 막을 내리기엔 어딘가 밋밋합니다. 반전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지켜야 할 작은 실무 조항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민수기는 40년의 대서사를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결말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민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취약함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경험한 것은 만나와 메추라기라는 기적이었지만, 그들의 기적 같은 일상을 채운 것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돌아서면 언약을 잊었습니다. 민수기는 인간이 얼마나 빨리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우리는 종종 뜨거운 눈물, 소름이 돋는 깨달음, 환상이나 계시의 체험, 혹은 기적적인 반전으로 신앙이 완성될 것처럼 기대합니다. 그러나 민수기는 그런 방식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물론 광야는 주님만이 내 도움 되신다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밖에 없는 곳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광야가 끝나면, 만나가 그치면 그때부터는 다른 차원의 영적 여정이 펼쳐집니다. 어쩌면 그게 진짜 광야인지도 모릅니다.
민수기는 기적을 남기기보다 기준을 남깁니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준 말입니다. 광야의 시작은 홍해를 건너는 기적이었지만, 여정의 갈무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규칙이었습니다.
감동의 무게가 신앙의 무게는 아닙니다. 신앙을 구성하는 질량의 대부분은 일상의 삶입니다. 사실 민수기 역시 40년이라는 긴 세월 중 지극히 일부의 굵직한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저 눈 뜨고 밥을 먹고 텐트를 수선하던 일상의 반복이 40년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기적 앞에서 환호하는 것은 쉽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생수가 터져 나올 때 찬양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감동이 지나간 자리, 텐트로 돌아와 다시 밥을 짓고 아이들을 달래며 껄끄러운 이웃과 부대껴야 하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지켜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뜨거운 눈물이나 가슴 벅찬 감동에서 신앙의 정점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에서, 익숙한 사람과 밥 먹는 자리에서, 화장실에 남긴 뒷모습에서 드러나는 질서의 흔적과도 같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단단하게 잡혀 중심과 그 질서에 대한 것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