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레위기 21:10-11)
대제사장의 직임은 혈통을 따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집니다. 이 영광스러운 승계 뒤에는 인간적인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부모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들은 시신에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며 애곡하지 말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순간에도 슬픔을 억누르고 성소를 지켜야 하는 것, 이것이 대제사장의 숙명입니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십계명 제5계명은 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데, 정작 대제사장에게는 부모의 장례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 율법의 엄중함 앞에서 그들은 평생을 억울해하며 살았을까요? 죽어서조차 아들의 배웅을 받지 못하는 비정한 인생이라며 원망했을까요?
어쩌면 그 반대였을 수 있습니다.
차기 대제사장이 될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가 눈을 감는 날 자신은 그 곁을 지킬 수도, 장례를 치러드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허락된 현재의 시간을 더욱 사무치게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아버지의 손을 한 번 더 잡았을 것입니다. 죽은 뒤의 화려한 장례보다 살아생전에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말입니다.
아버지 대제사장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장례식에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서운해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비록 장례식에는 없겠지만 자신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자리에서 자신을 기억해줄 아들을 생각하며 도리어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품에 안겼고, 아들은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 앞이라는 동일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육체의 작별 인사는 나누지 못하지만 그들은 가장 거룩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영원히 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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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묵상 2권
<서툰 인생, 잠깐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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