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칼럼

지각생들을 위한 식탁

십자가는 1등으로 도착한 모범생들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자, 죄의 냄새가 나는 자,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를 위해 하나님이 작정하고 차리신 식탁이자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베푸신 은혜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라는 탕자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원한 ‘두 번째 유월절’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자들에게, 자격이 없어 쭈뼛거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다시 상을 차리시고 초청장을 보내셨습니다. 인간의 방황이 하나님의 기다림을 지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의 실패보다 더 깁니다.(본문에서)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수기 9:11)

유월절은 단순한 명절이 아닙니다. 구원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축제이자,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곧 백성 중에서 끊어짐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9장에는 파격적인 예외 조항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유월절’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자나 먼 여행 중에 있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똑같은 날짜에 다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단순한 유예나 기한 연장이었을까요?

여기에는 구속사적 섭리와 신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유월절의 식탁이 완성된 곳이 바로 골고다 언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죽으셨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이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자리였다면, 골고다 위의 유월절은 이기심과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식탁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과 접촉한 자들입니다. 여행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머나먼 방황 중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인생에는 죽음의 냄새가 배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먼 데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첫 번째 유월절 명단에 우리 이름은 없습니다. 죄에 오염되어 부정한 자들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었던 영원한 결격 사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1등으로 도착한 모범생들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실패한 자, 죄의 냄새가 나는 자, 먼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를 위해 하나님이 작정하고 차리신 식탁이자 자격 없는 자들을 위해 베푸신 은혜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라는 탕자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원한 ‘두 번째 유월절’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친 자들에게, 자격이 없어 쭈뼛거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다시 상을 차리시고 초청장을 보내셨습니다.

인간의 방황이 하나님의 기다림을 지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의 실패보다 더 깁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oZuLTjic8sI?si=R9sf1BVLK925vE7y

📘잠깐묵상 2권
<서툰 인생, 잠깐묵상>
https://youtu.be/YJQY2bnwjAE?si=3s5Q9NCt1mlnK6A8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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