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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칼럼] 사회생활을 하는 신앙인의 딜레마

우리에게 무엇이 불가피한 일이고, 무엇이 불가능한 일이며, 우리가 발버둥 치며 내놓는 최선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우리의 최선 위에 하나님의 최선을 더해 가시겠다는 약속 아닐까요?-본문에서 <이미지 AI 생성>

“하나님, 림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고백입니다. 나병에 걸렸다가 엘리사를 만나 고침을 받은 후 그에게 신앙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을 믿고 보니 구원의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아만에게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 전체가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철저하게 홀로 고립된 채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딜레마는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왕을 보좌하여 림몬 신을 섬기는 국가적 의식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왕하 5:18)

나아만의 이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업무상 신앙적 양심과 부딪히는 일을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만 내가 살아남는 냉혹한 경쟁 시스템 한가운데에 던져지기도 하고, 크리스천으로서 가족 안에서 제사 문제를 두고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거대한 자본 시장 속에서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해야 하는 직장생활이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과도 협업을 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많은 신앙인들이 죄책감을 가슴 한편에 갖고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아만처럼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 림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엘리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왕하 5:19상)

이 말씀은 타협에 대한 면죄부가 아닙니다. 이 땅을 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도의 두려움과 한계를 하나님이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불가피한 일이고, 무엇이 불가능한 일이며, 우리가 발버둥 치며 내놓는 최선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우리의 최선 위에 하나님의 최선을 더해 가시겠다는 약속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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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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