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분노를 설계하는 사람

사사기 19장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삿 19:20)
자기 첩의 시체를 토막 내서 여러 지파에 보낸다는 발상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것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극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레위인은 단순한 말이나 편지만으로는 충분한 자극을 주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엽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공동체 전체의 분노를 유발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판단은 주효했습니다. 시체 토막을 본 사람들은 눈이 돌아갑니다. 미스바 광장에 무장한 사람 40만명이 순식간에 모입니다. 분노에 적정선이 있을까요?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분노입니다. 그나마 개인의 분노는 자제력이나 논리적 사고가 개입할 틈이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무리가 분노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집단의 분노는 통제 불가능한 파괴력을 가집니다. 결국, 분노에 사로잡힌 40만 대군은 베냐민 지파를 거의 궤멸시키고 맙니다. 이 모든 일이 레위인 한 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명이 40만명을 움직인 것입니다.
오늘날, 다수를 다루는 소수의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대중의 성향을 분석하고, 적절한 자극을 주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초연결성 덕분에 무리는 더욱 쉽게 형성되고, 더욱 빠르게 격분하며, 더욱 무서운 속도로 행동합니다.
아무리 많은 ‘복수’라도 집단의 성향과 특징에 따라 그들을 3인칭 ‘단수’로 치환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소수가 가진 특정 생각을 다수에게 효율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미디어 인젝터까지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군중은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분노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설계한 사고를 주입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노가 낳은 결과를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옵니다. 자기의 형제 베냐민 지파의 씨를 말린 것을 깊이 뉘우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습니다. 이로부터 시간이 흘러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옹립되면서 사사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 사울 왕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유다 지파 출신인 다윗을 경계한 것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었을까요?
베냐민 지파를 궤멸시키는데 가장 앞장섰던 지파가 유다 지파였다는 사실이 그저 옛날이야기이기만 했을까요? 한 명의 레위인이 지핀 분노의 불길은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이스라엘을 오래도록 태우고 있었습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