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려인마을③] 이철우 경북지사가 이 글을 읽는다면…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2년 12월 16일 오랜만에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을 다시 찾았다. 2021년 6월 찾았으니 꼭 1년 반만이다. 경북대 사회과학원 학술행사(‘트랜스로컬리티적 공간에서의 한인 디아스포라 혼종성’에서 “인구감소시대 지방 중소도시의 동포집거지, 가능성과 전망” 발표)를 서둘러 마치고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로 향했다. 역시 이번에도 대구에서 영어권 외국인에게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대구의 윤랩(Yoonlab) 소장인 윤애숙 박사가 동행했다.
점심식사로 고려인 동포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삼사(Samsa)를 사들고 카페 ‘고려인이랑’에 들어갔다. 카페 ‘고려인이랑’은 경북고려인통합지원센터와 경주외국인도움센터 관계자가 주축이 되어 2020년 10월 경주 거주 고려인 소상공인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시작한 사업체다. 경주 거주 고려인동포와 한국인이 어울릴 수 있는 맞춤형 일터 조성 및 고려인동포와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이 목표였다.
2020년 6월 카페에 ‘고려인이랑’ 간판도 달린 상태였는데, 그때 필자는 경북고려인통합지원센터/경주외국인도움센터 장성우 센터장에게 고려인동포에게는 ‘고려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고, 이웃 한국인과 방문객에게는 고려인 이해를 돕는 자료로 장식할 것을 제안했다. 마침 장성우 센터장도 경기도 안산 고려인문화센터 역사관과 고려인 행사 시의 고려인 역사·문화 소개 전시물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성우 센터장이 차를 끓이는 동안, 카페 벽면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사)너머가 제공한 고려인의 역사 자료 전시를 살펴보았다. 카페의 중심 벽면에 고려인의 이주역사 지도 좌우에 시베리아 항일운동 59인의 영웅 사진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고려인 관련 저서들이 비치). 또 카페 안쪽에 (사)너머가 제공한 고려인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소 아쉬운 느낌은 있어도 카페 ‘고려인이랑’이 그동안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의 고려인마을에도 각각 형편에 맞게 고려인이 누구인지? 러시아 연해주 시기 고려인의 항일운동과 문화운동과 중앙아시아 시절의 고려인의 생활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사진 전시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구감소지역 대상으로 법무부가 시행한 지역특화형 비자 유형2(동포가족) 사업과 관련한, ‘고려인 콜호즈’ 토론회에 장성우 경주 고려인마을 협동조합 이사장도 초청했다. 이후 장성우 이사장은 체류기간이 끝나가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경주 고려인동포 및 이미 영천에 사는 고려인동포들이 인구감소지역으로 다양한 지원 혜택이 예상되는 영천에서 새 삶터를 이루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영천시를 방문하고 경상북도 및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와 연락하고 있는 중이다.
1년 반 전에도 필자는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경주 고려인마을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시아엔> 2021년 7월17일 “경주시, 보다 섬세한 정책으로 ‘고려인정착’ 보듬길”) 그러나 경주 고려인마을은 지역의 활동가와 고려인 소상인들만이 어려운 여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인구감소지역 지방의 활력 제고를 위해 우리 정부는 2022년부터 10년간 매년 1조원의 지방소멸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89개의 인구감소지역 시군구 외에 18개의 ‘관심지역’도 지원사업 대상지에 포함했는데, 경상북도에서는 경주시와 김천시도 ‘관심지역’이다. 그만큼 경주지역도 사정이 어려워져 ‘빨간등’이 켜졌다는 의미다.
‘인구가 국가의 경쟁력이고 국력’이듯이 지역 경쟁력도 인구에서 나오는 시대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외국인 농업노동자들이 들어오지 못하자 전남과 전북의 지자체에서 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에 농사일을 할 수 있는 고려인동포의 지원을 요청한 바가 있다.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을 수행 중인 지자체(광역, 기초)마다 유형1(우수인재) 사업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유형2(동포가족)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고려인동포가족’은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지방 중소도시의 학교를 살리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10월 광주광역시를 시작으로 많은 광역지자체(경기도, 경상북도, 인천광역시, 경상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와 기초지자체(김포시와 안산시)에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그런데 그동안 조례 제정에 그친 지자체가 많다. 그래도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그리고 안산시는 관내 고려인지원단체를 지원하려고 노력해왔다. 인구감소시대이다. 인구감소지역과 관심지역은 정부의 지방소멸기금까지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확인하지만, 지금까지 성건동 고려인마을은 외국인도움센터(2015년)로 만들어 경주시 체류 외국인을 돕다가 경주 고려인마을센터(2018년)에 이어 경상북도 고려인통합지원센터(2020년)를 운영하면서 자활책으로 바실라상사 사회적협동조합(2020년)을 시작했다. 최근 조합의 명칭을 ‘동포체류센터사회적협동조합’으로 개명했다. 한국 태권도 사범자격증을 딴 고려인동포가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재외동포(F-4) 비자를 취득하기 위한 방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술학원도 자체로 운영하고 있다. 실로 한국사회에 정착하려는 경주의 ‘귀환’ 고려인동포사회의 노력은 다른 고려인마을의 모범이다. 그래도 여전히 버겁다. 센터/조합에서 일하는 한국인/고려인동포도 자신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는 안산시의 지원으로 4명의 활동가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관심지역’인 경주시가 아니라 이제는 경상북도가 당장 내년부터라도 도내에서 유일한 경주 고려인마을의 자구(自救) 노력, 사회적협동조합 활동 실태를 파악하고 경주 고려인사회가 지역사회 발전에 적극적인 소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경북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의 ‘일부 조항’이라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